몸에 한 번 걸치는 데만 수백, 때론 수천만원까지 든다. 식(式)이 끝나면 다신 입을 일이 없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가(高價)의 수입 제품이 기승을 부리면서 웨딩드레스는 어느덧 낭만과 환상을 담보로 '일생의 단 하루'를 볼모로 만든 소비재가 돼 버렸다.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 20명은 이런 웨딩드레스를 향해 묻는다. "제대로 된 우리 드레스를 만들 순 없을까?"

산수(山水) 무늬가 새겨진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김은주의 옷(사진 왼쪽)과 디자이너 서정기의 쓰개치마 드레스. 허리에 두른 덧치마는 쓰개치마나 베일로도 쓸 수 있다.

오는 7월 2일 오후 2시, 오후 7시 서울 중구 소공로 프라자호텔에서 열리는 'K 드레스 쇼(K-Dress Show)'는 이 물음 끝에 얻은 답이다. 유명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10명, 패션 디자이너 6명, 한복 디자이너 4명이 창간 20주년을 맞은 '마이 웨딩'과 손잡고 각각 자신만의 '가장 한국적인 웨딩드레스'를 완성해 대중에게 선보인다. 웨딩드레스는 순백(純白)의 빛깔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우리나라 오방색을 토대로 다채로운 변주를 했다.

오방색(五方色)의 변주

배우 고현정·채시라·노현정 전 아나운서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했던 패션 디자이너 서정기는 조선 후기 화가 혜원 신윤복의 그림에서 답을 찾았다.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 속 여인이 얼굴을 가렸던 쓰개치마가 서씨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얼굴에 두르면 쓰개치마로도 쓸 수 있고, 허리에 두르면 풍성하게 냇물처럼 흘러내리는 드레스 자락으로도 쓸 수 있는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흰색과 검정, 초록과 붉은빛이 은은하게 얽혀 달빛 아래 빛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사진 왼쪽)한복 디자이너 정원경의 작품. 자수 치마와 저고리를 겹쳐 입으면 한복 드레스로 변신한다. (사진 오른쪽)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최재훈의 옷. 수묵화 패턴이 그려진 겹치마를 덧입을 수도 있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최재훈은 오방색의 흑색을 드레스에 과감하게 차용(借用)했다. 은은한 회색빛 인어 라인 드레스 위에는 흑색의 오간자(organza·가볍고 투명한 직물)를 더했다. "회색 화선지에 먹물로 난을 친 느낌"이라는 설명이다.

한복 디자이너 정원경은 전통 활옷에서 영감을 받아 치맛자락 곳곳에 한땀 한땀 자수(刺繡)를 수놓았다. 족두리를 연상케 하는 새하얀 왕관(tiara)도 만들었다. 디자이너 박소현은 새까만 웨딩드레스를 만들고 우리나라 전통 문양인 얼음과 매화 무늬를 새겨넣은 살굿빛 천을 덧댔다. 전통과 현대가 그렇게 드레스 위에 교직(交織) 했다.

때론 드레스로, 때론 평상복으로

웨딩드레스를 평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도록 신경 쓴 경우도 많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우아한 실크 드레스 속에 바지를 숨겨놓았다. 부드럽게 펼쳐진 치맛자락을 살짝 떼면 기품 있는 바지 정장이 된다.

윤원정 디자이너는 고려청자의 옥빛을 연상시키는 7겹 꽃잎 드레스를 만들었다. 치맛자락은 한겹 한겹 떼어낼 수 있어 원피스로도 입을 수 있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이명순도 역시 H라인 원피스에 스커트가 연결된 조끼를 덧댔다. 조끼를 벗으면 간결한 원피스가 된다. 문의 (02)2262-7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