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전 경희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지난 24일 국회운영위원회 소위원회는 국회 폭력 방지와 국회의원 겸직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정치쇄신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정치쇄신법안이 소위원회를 통과한 바로 다음 날부터 6년 전 정상회담 대화를 두고 사생결단 정쟁하는 것을 보면, 이 법안이 운영위 전체 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하는 것은 부지하세월일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쇄신법 내용이다. 경제 민주화를 거래의 불공정 행위를 막는 것 정도로 치부하는 것만큼이나 쇄신 법안에는 정치 개혁의 알맹이가 빠져있다.

사실 우리의 정치 구조와 경제 구조는 일란성 쌍생아다. 법의 규제가 맥주 시장의 과점 체제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홍종학 의원의 지적처럼, 우리의 정치 관계 법도 민의의 왜곡과 정치 세력 간 불공정 경쟁을 야기하는 과점 정치를 조장한다. 지역 구도에 기댄 거대 정당에 유리한 소선거구제는 말할 것도 없고, 교섭단체 중심의 국고 보조금 배분 제도는 국민의 혈세로 과점 정치를 유지해준다.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대하여 그 100분의 50을 정당별로 균등하게 분할해 지급하도록 하고, 나머지 100분의 50은 의석 수, 득표율 등을 감안해 배분하도록 하는 우리의 국고 보조금 배분 제도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도다. 독일은 각 정당이 총선에서 얻은 득표 수에 0.7마르크를 곱한 액수를 원칙으로 하지만, 처음 400만표에 대해서는 0.85마르크를 곱하도록 함으로써 군소 정당을 보호한다. 체코, 헝가리 등은 원내의 모든 정당에 동일한 액수를 지급하고, 이에 더해 득표율에 비례해 국고 보조를 지원함으로써 역시 군소 정당을 보호한다. 영·미와 같이 정당에 대한 국고 보조 제도가 없는 나라가 아닌 한, 모두 득표율에 대한 비례성과 군소 정당에 대한 보호를 원칙으로 한다.

더 어처구니없는 점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적이 없는 정당도 엄청난 국고 보조를 받는 무책임 정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교섭단체 구성 여부를 포함해 의석 수가 국가 보조금을 배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국민의 선택을 오도하기 위해 정당의 간판을 바꿔 달아도, 정치인들의 이합집산 끝에 정당을 합하거나 쪼개도 국고 보조금을 받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때문에 유권자는 자기를 대표해 달라고 선임한 적이 없는 대리인에 대해서도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불합리한 경제 구조와 정치 구조의 유사성은 또 있다. 대표적으로 수억원을 내고도 빈 땅만 보고 아파트를 분양받아야 하고, 기업의 이익을 위해 스마트폰의 국내 도입이 늦어지는 등 공급자 중심의 경제 구조는, 선거를 제외하고는 국민의 참여가 배제되어 있는 우리의 정치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프로슈머의 시대임을 외치는 21세기지만 우리는 여전히 공급자 중심 경제를 가지고 있듯이, 세계는 전자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등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보완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치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자고 하면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느냐, 반정치냐 하며 윽박지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는 글로컬(glocalization)을 얘기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중앙이 지방의 부를 빨아들여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커지고 있듯이, 중앙 정치는 공천권을 독점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하고 있다. 공천권을 지방으로 이양해 정치권력의 지방 분권이 필요하다면 지방은 정치 토호들의 부패가 심하기 때문에 안 된다며 중앙당의 공천권 독점을 위해 철옹성을 쌓는다.

밀어내기 횡포로 인한 대리점주들의 자살로 갑을 관계가 부각되자 각 정당은 앞다투어서 을의 보호자를 자임하고 나서지만, 정작 정치권의 갑을 관계는 바로잡을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정치권의 갑을 관계가 더 나쁜 것은 민주적 위임(delegation)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최종적인 갑이고 지방의원이 중간 갑이고 국회의원이 을이어야 정상이지만, 오히려 국회의원들이 지방의원을 노예 부리듯 한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 정치와 경제는 불공정 경쟁, 소비자(유권자)의 이익 무시, 중앙과 지방의 격차, 그리고 왜곡된 갑을 관계라는 동일한 구조적 문제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동일한 문제를 지닌 정치가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겠다고 나서면 오히려 법조문이 독과점을 조장하는 예와 같은 시장의 정치적 실패마저 초래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경제 민주화를 원한다면 정치 구조를 먼저 개혁해야 한다. 정치가 먼저 정치 세력 간의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들고, 소수 세력을 보호하며, 유권자의 참여를 확대하고, 지방으로 정치권력을 이양하며, 민주적 위임 관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렇게 정치가 먼저 변해야 정치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진정한 경제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