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부상으로 반신불수가 된 코리 한(맨 오른쪽)이 애리조나 주립대 대학리그 경기 전 동료 선수들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매년 6월이면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선수 드래프트가 열립니다. 전체 30개 팀이 50라운드까지 최고 1500명의 선수를 지명합니다. 많이 뽑는 것 같지만 약 1만5000개의 고등학교 야구팀과 400개가 넘는 대학교 팀에 등록된 선수만 약 46만 명. 그중에 약 12만 명이 드래프트 대상입니다. 그야말로 동네마다 야구 천재로 꼽히는 선수나 드래프트에 이름을 겨우 올릴 정도입니다. 게다가 실제로 프로팀과 계약하는 선수는 250명 정도에 불과해 그 경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마이너리그에 들어가기조차 이렇게 어렵습니다.

올해 드래프트에서는 100년이 넘는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 드래프트를 통해 스카우트된 겁니다. 주인공은 애리조나주립대생 '코리 한(Cory Hahn)'입니다.

고교 최대 유망주에서, 하루아침에 반신불수

불운의 순간 2011년 2월 애리조나주립대 선수이던 코리한이 뉴멕시코대와의 미국 대학리그 경기에서 2루로 도루를 하다 상대 2루수 다리에 머리를 부딪히고 있다.

코리 한은 한때 야구 천재로 꼽히던 소년이었습니다. 산타아나 고교 졸업반 시절에는 외야수로 4할1푼1리를, 투수로 14승1패를 기록하며 팀을 주 챔피언으로 이끌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최우수 고교 선수에게 주어지는 'Mr. Baseball'에 선정되기도 했고,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미국 대표로 뽑혀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활약 덕분에 그는 2010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26라운드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지명됐습니다. 그러나 평소 학업을 우선시했던 그는 프로 입성을 포기하고 야구 명문 애리조나주립대(ASU)를 선택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도 충분히 프로에 갈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옵니다. 1학년이던 2011년 2월, 그는 미국 대학리그 3번째 경기에 외야수로 출전했습니다. 타자로 1루에 출루하고 나서, 2루 도루를 시도했습니다. 2루 베이스에 도착할 때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손과 머리가 먼저 들어가는 슬라이딩)을 시도했습니다. 그날 왜 그가 그런 모험을 시도했는지는 미스터리입니다. 어려서부터 야구를 했지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한 기억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 2루수의 다리에 그의 머리가 세게 부딪쳤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는 "공이 외야로 빠지는 것이 보여 빨리 일어나 3루로 뛰어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돼 장시간의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가슴 아래로는 전혀 쓰지 못하는 하반신 불구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야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 후 2년 동안 코리 한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반신마비 환자로 살아남아야 하는 방법을 익혀야 했지요. 1년 반 동안 계속 집과 병원을 오가며 치료와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야구팀의 보조코치 자격으로 그라운드를 찾아 동료를 도왔습니다. 학업과 재활을 계속하면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찾아온 기적… 애리조나 드래프트에서 지명

애리조나의 홀 사장 데릭 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 스 사장이 박수를 치는 모습.

지난주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유망주를 고르고 골라도 시원치 않은 선수 시장에서 애리조나 구단이 드래프트 전체 34라운드에서 코리 한을 지명한 것입니다. 전체 34라운드라고 하면 뒷번호라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 부서는 눈에 불을 켜고 미국 전체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면서 12만명의 아마추어 선수 중에 옥석(玉石)을 가리기 위해 전력을 기울입니다. 30라운드, 40라운드에서 지명한 선수가 메이저리그까지 가는 일은 스카우트에게는 큰 경사와 자랑이 되므로 저마다 좋은 선수를 뽑기 위해 치열한 정보전을 펼칩니다. 그런데 그런 순위에 하반신 불구 청년을 드래프트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바로 야구단이 돈벌이나 기업 홍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국내 프로야구와는 달리 사회환원 같은 봉사도 중시하는 미국 야구의 역사와 전통, 풍토가 있기 때문입니다.

코리 한 선수를 스카우트한 애리조나 구단은 메이저리그 구단 중에서도 유달리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구단입니다. 코리 한 선수의 스카우트를 최종 결정한 애리조나 데릭 홀(Derek Hall) 사장은 그런 인물입니다. 그는 15년 전 박찬호 선수가 활약했던 LA 다저스에서 홍보실장으로 일했습니다. 당시 저는 스포츠조선 특파원으로 다저스를 취재했기 때문에 그와 비교적 막역한 사이입니다. 그는 당시 동양인에게 유달리 친절했고, 농담도 잘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물었습니다.

―코리 한과의 인연은?

"코리는 야구장학생으로 우리 팀 연고지인 애리조나주립대에 들어갔다. 굉장한 유망주였기 때문에 구단이 유심히 보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웠다. 내 특별보좌관인 루이스 곤살레스(과거 애리조나 4번 타자)가 같이 문병을 가자고 해서 코리 한을 직접 만났다. 야구는 물론 다른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이후 어떻게 도와줄 수 없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 구단의 스카우트 팀에서 코리를 드래프트를 통해 스카우트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스카우트 팀에서는 몇 달 동안 회의를 했다고 한다. 나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코리 한에게 좋은 느낌을 받았나 보다.

"코리에게는 특별한 야구 재능과 열정이 있다. 다친 직후 병문안을 갔을 때 그가 얼마나 특별한 청년인지를 알았다. 그와 가족을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를 위해 구단이 할 일이 있다고 느꼈다."

―다른 방식으로 구단에 채용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유망주를 데려올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드래프트를 통해 코리 한 선수를 스카우트한 이유는?

"우리 애리조나 구단은 사회로의 환원을 중시한다. 지난 15년간 3300만달러(377억원)를 지역 사회에 환원했다. 이 지역의 프로 풋볼, 농구, 하키팀의 환원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봉사와 환원은 많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꿀 뿐 아니라 우리 팀이 팬과 함께하는 길이다. 승리를 거두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야구단이 지역 사회와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드래프트를 통해 코리 한을 데려오기로 했다.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34라운드에 지명한 이유는?

"코리 한의 선수 시절 등번호가 34번이었다. 그 의미를 새기기 위해 34라운드에 지명했다."

―코리 한은 앞으로 구단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되나?

"이번에 지명하는 건 단순한 선수 지명에 그치는 게 아니다. 코리 한이 대학교 4학년이 되는데, 앞으로 1년 동안은 우리 구단의 인턴으로 일하도록 할 예정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풀타임 직원으로 채용할 예정이다. 스카우트 일을 하고 싶다면 스카우트 학교에 보낼 것이고, 구단 홍보나 다른 원하는 자리가 있으면 그 직책에서 말단부터 똑같이 시작하도록 하겠다. 코리는 일하려는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 우리가 그를 지명한다고 전화 통화를 했을 때 코리 한은 '이제는 혼자 운전도 할 것이고, 앞으로 완전히 혼자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을 해서, 애리조나 팀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코리 한이 일하고 있는 애리조나주립대 야구부 감독 팀 에스메이 감독도 그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코리 한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지식과 통찰력은 정말 대단하다. 대학 야구에 그렇게 빨리 적응하는 선수를 처음 봤다. 그래서 1학년이 주전을 뛸 수 있었다. 큰 사고를 당했지만, 오히려 그는 늘 긍정적이었다. 그의 드래프트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다. 무슨 일을 시키든 코리는 당당하게 잘해낼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발전할 청년이다."

코리 한 선수는 방학을 맞아 남부 캘리포니아의 집으로 가는 비행기에 막 탔을 때 데릭 홀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구단의 드래프트 제안을 받았을 때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따뜻해집니다.

코리 한은 지명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나를 지명해 준 애리조나 구단에 뭐라고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구단의 일원이 돼 아주 영광스럽고 지금의 이 벅찬 감동은 영원할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애리조나 지역 언론이 전한 코리 한의 목소리는 이렇습니다. "매일 매일이 투쟁이지만 조금씩 더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혼자 운전을 하고 다닐 수 있고 처음에는 전혀 하지 못하던 많은 일을 스스로 하고 있다. 나의 목표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마지막에는 다시 걷는 것이다. 그럴 이유가 없었는데도 나를 선택해준 애리조나 구단에 정말 감사드린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봉사 잘하는 애리조나 성적도 1위

LA다저스 시절 박찬호와 1997년 11월 LA다저스 홍보실장이던 데릭 홀 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사장이 서울에서 박찬호의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애리조나는 MLB에서 시장 규모가 가장 작은 편에 속하는 구단입니다. 2013년 기준으로 선수단 연봉 총액은 전체 30개 구단 가운데 하위권인 약 9000만달러입니다. 류현진 선수가 뛰는 다저스 연봉 총액 약 2억2000만달러의 절반도 안 됩니다. 야구장은 사막 한가운데 있고, 수익도 적을뿐더러, 멕시코계 이민자도 많아 팀 꾸리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도 6월 현재 애리조나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반면 류현진 선수 때문에 우리 국민이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 다저스는 꼴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코리 한을 스카우트하는 구단의 철학과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리조나 구단의 홈경기장인 '체이스필드'를 가보면, 구단 직원이 항상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사장부터 말단의 주차 안내원이나 티켓 판매 직원까지 늘 팬들에게 친절합니다. 야구장에 가는 순간 그런 분위기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애리조나 구단은 항상 지역사회와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고, 기부금을 많이 냅니다. 또 선수를 선발할 때도 인간 심성이 어떤지, 대외적인 봉사활동이 어떤지를 유심히 본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늘 분위기가 좋고, 팀워크가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연봉 수천억원을 받는 초특급 스타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성적은 늘 상위권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신기한 팀이죠.

애리조나 팬들은 MLB에서 설문조사 때마다 자신들이 30개 팀 중에 가장 행복한 팬이라고 답한다고 합니다. 애리조나 구단은 피닉스 비즈니스 저널지에서 매년 선정하는 '애리조나 최고의 일터'에 7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데릭 홀 사장은 지역의 상공회의소를 비롯해 각종 봉사 단체 등 25개 지역 사회단체의 일원으로 야구장 밖의 봉사에도 여력을 쏟고 있습니다.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야구장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팬과 인사를 나누고 고충이나 요구 사항을 듣는 데릭 홀 사장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반신불수 메이저리거를 스카우트할 줄 아는 애리조나 구단 철학에서 이런 행복함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