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택 월세를 아끼려 4년간 하우스메이트로 지내온 A(31)씨와 B(여·29)씨. 지난해 2월 말쯤 A씨는 B씨가 속옷을 입지 않은 것을 본 뒤 성폭행하려다 실패했다. B씨는 다행히 몸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그 후 7개월 넘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2. 지난해 4월 대학생 A(25)씨는 만취한 후배 B(여·20)씨를 모텔에 데리고 가 성폭행하려다 실패했다. B씨는 불안, 수면장애, 대인기피 등 '급성 스트레스에 의한 반응' 증세를 보여 3개월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위 사건의 피해 여성들은 모두 "정신적 상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재판장 천대엽)는 첫째 사건에선 '상해'를 인정했지만 둘째 사건에선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범행 자체 때문이 아니라 범행을 부인하는 A씨의 태도 때문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강간죄는 법정형이 '징역 3년 이상'인 데 비해 강간치상죄는 '징역 5년 이상'으로 가중처벌되기 때문에 재판에서 쟁점이 되고 있지만, 정신적 상처는 정도를 측정하기 어려워 기준 설정에 대한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일 오후 연세대에서 이 대학 법·심리 융합센터 소속 교수 20여명과 함께 '정신적 상해의 정량화 방안'에 대한 공동 연구회를 열었다.

천대엽 부장판사는 "성범죄는 어느 정도 트라우마를 동반하는데, 이걸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일선의 고민이 깊다"며 심리학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다.

심리학자들은 정량화가 쉬운 문제는 아니라면서도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박수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금은 심리장애의 유무만 파악할 수 있는데, 조만간 심각성까지 측정해내는 검사 도구를 개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해외에서 사용하는 심리 평가 도구들을 우리 실정에 맞게 표준화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법관들은 뇌의 활성화 정도를 탐지하는 fMRI 기법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으나 실무에 도입하기엔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한계가 있어 아쉬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