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정치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1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 착수 57일 만에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국정원 내부 정보를 유출한 혐의 등으로 전직 국정원 김모씨와 정모씨를, 댓글 수사 증거 인멸을 시도한 혐의로 서울경찰청 박모 경감 등 이 사건으로 모두 5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국정원 간부와 직원 6명에 대해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검찰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 직원들에게 인터넷상에서 정부·여당을 지지하거나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 게재 및 관련 게시글 찬반 표시 등을 지시하고 보고받는 등 국내 정치와 선거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원 전 원장은 2010년 1월 22일 "세종시 등 국정 현안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좌파 단체들이 많은데 보다 정공법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음. 우리 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과 정부 정책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할 것임"이라고 지시하는 등 2009년 5월부터 지난해 대선 직전까지 22차례에 걸쳐 정치나 선거에 개입할 의도로 보이는 발언을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에 대해 원 전 원장 측은 “종북 세력 척결과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인터넷 활동을 하라고 했지, 정치나 선거에 개입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었다”면서 “검찰이 무리하게 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 결과 국정원 심리정보국 소속 70여명은 ‘오늘의 유머’ ‘보배드림’ 등 15개 인터넷 사이트에 2009년 2월부터 작년 12월 17일까지 댓글 5333개를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 중 4대 강 사업 홍보 내용 등을 담은 1977개의 글은 정치 개입성 글로 판단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또 지난 대선에서 특정 후보와 관련된 글에 1281회에 걸쳐 찬성과 반대 의견을 표시(클릭)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특히 지난해 8월 29일부터 12월 14일까지 특정 대선 후보 등을 비판한 73개의 글에 대해선 선거법 위반의 증거물로 봤다.
하지만 국정원 측은 “같은 기간 직원들이 올린 글은 1700개쯤으로 검찰은 소수의 글을 보고 대선 개입으로 결론을 냈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안철수는 문재인 밀어주고 하산했으면 뻔한 것 아니냐’ 등 글에 대해 국정원 측은 “대북 활동 중인 직원들이 실수로 쓴 글일 가능성이 있는데도 국정원의 대북 심리전 업무를 선거 개입으로 왜곡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그러나 국정원의 이종명 전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정보국장 및 일반 직원들에 대해선 원 전 원장의 지시를 따른 것으로 보고 ‘혐의는 있지만 재판에 넘기지 않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은 할당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고 주된 책임은 원 전 원장에게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검찰은 심리정보국 직원들의 신상 정보와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문건을 외부에 누설한 정모씨를 공직선거법 및 국가정보원직원법 위반 혐의로, 기밀 정보를 전달받아 민주당에 건넨 전직 국정원 직원 김모씨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한편 검찰은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해선 경찰 수사 단계에서 사건을 축소·은폐하도록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고, 대선 직전 부실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