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그리스 정부가 11일(현지 시각) 국영방송 ERT에 대한 구조조정 방침을 선언하고 TV·라디오 방송 송출을 전격 중단시켰다. 공무원 신분의 ERT 직원 2500여명을 일시 해고했다가 향후 일부만 재채용해 '비용절감형 현대적 방송'으로 재출범시키겠다는 것이다.
시모스 케디코글로 정부 대변인은 이날 "우리 국영방송은 쓰레기의 피난처"라며 이 같은 조치를 발표했다. ERT 기자 출신인 케디코글로는 "ERT는 공공 부문 중 투명성 결여와 엄청난 낭비의 상징이 됐다. 민영 방송사보다 예산은 3~6배, 인력은 4~6배 잡아먹으면서 시청률은 방송사 평균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했다. AP통신은 "ERT는 실제 정치권 낙하산 인사들의 천국으로, 정부·여당 시책 홍보에 치중하면서 신뢰와 경쟁력을 잃었다"며 "이런 유휴 인력으로 막대한 정부 재원을 잡아먹으면서 모든 가구에 TV가 있건 없건 수신료를 부과해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ERT 노조와 야당은 국영방송 중단 조치는 구제금융을 받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유례없는 조치라며 "객관적 정보에 대한 국민의 접근권을 차단, 민주주의에 타격을 가했다"고 반발했다. 방송사 직원 등 수천 명은 이날 밤부터 아테네 본사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재정 적자로 파산 위기에 몰린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예산 긴축과 국유재산 매각에 돌입했다. 경기 침체로 지난 3년간 민간 부문에서 총 100만명의 인력이 해고됐지만 헌법상 정년(停年)이 보장된 공무원들은 안전지대에 있었다.
그리스는 전체 노동가능인구의 4분의 1인 70만여명이 공무원이다. 그러다 지난 4월 '채권단 트로이카(유럽연합·국제통화기금·유럽중앙은행)'의 압력에 따라 2015년까지 공무원 총 1만5000여명을 감축하는 긴급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됐고, 이번 ERT 구조조정은 그 첫 사례가 됐다. 현 27%에 달하는 실업률은 더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