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장관급 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접촉이 9일 판문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앞으로도 대북(對北) 관계 현안에 대해선 당국 간의 공식 대화 채널을 통해 풀어가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정부에서처럼 대북 문제와 관련해 당국 간 공식 대화와 '비선(秘線) 접촉'이 함께 이뤄질 경우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할 수 있는데다, 자신이 강조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대북정책의 투명성 확보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남북 당국 간 대화를 통해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남북 간의 '대화 모멘텀'을 유지해나가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9일 청와대 등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북한이 지난 6일 우리 측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한 '당국 간 회담'을 제의하고, 이날 장관급 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접촉에 나선데 대해 일단 '개성공단 관련 문제 등은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그동안의 우리 측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우리 정부는 북한의 잇단 도발 위협과 관련해 "섣불리 대응할 경우 오히려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대화 제의 등의 다른 유인책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우리 입주기업들의 피해가 현실화되자, "북한의 생각을 한 번 들어보겠다"며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전면에 내걸었다. 이에 통일부는 지난 4월25일 개성공단 정상화 등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 개최를 처음 북측에 제의했다.
박 대통령은 이후 북측의 잇단 회담 제의 거부로 개성공단에 잔류해 있던 우리 측 근로자 전원의 귀환 조치가 이뤄진 뒤에도 통일부를 통해 우리 기업들이 개성공단에서 갖고 나오지 못한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을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을 거듭 제의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 측 입주기업을 상대로 개성공단 내 물자 반출 등의 논의를 위한 방북(訪北) 허용 의사를 밝히고, 또 우리 측 민간단체에 6·15남북공동선언 기념행사의 공동개최를 제안하면서도 우리 측의 당국 간 회담 제의에 대해선 거부 의사를 밝혀왔다.
그러던 북한이 '당국 간 회담'을 제의해오고 이날 실무접촉에까지 나서게 된 것은 "분명히 종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란 게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박 대통령도 지난 6일 "뒤늦게라도 북한이 당국 간 남북대화 재개를 수용해 다행"이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아울러 그는 "앞으로 남북 간 대화를 통해 개성공단 문제를 비롯한 여러 현안을 해결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직 북한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핵심 요건인 비핵화(非核化)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이고, 또 이번에 당국 간 회담을 제의한 배경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린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된 상황을 계속 유지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남북한의 '당국 간 대화'를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북한의 '정상국가화(化)'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문제를 과거와 같은 시혜적 관점에서 접근할 경우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거듭나는 데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태도 변화는 일방적으로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북한 스스로 자신들의 행위와 그에 따른 책임을 판단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그래야 남북 간엔 물론, 국제사회와도 신뢰관계가 구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도 그간 "북한의 도발이 지원과 보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이젠 끊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동시에 "북한의 올바른 선택"을 주문해왔다.
아울러 그는 지난달 31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오찬 간담회에선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정부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주면서 '왜 (북한은) 정부와 대화하지 않느냐'고 촉구하는 게 남북한 간에 신뢰를 구축하면서 정상적 관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게 하는 길"이라며 "자꾸 '민간단체를 빨리 (북한에) 보내라', '6·15기념행사도 하게 해 줘라'는 식으로 해선 (상황이) 점점 더 꼬이고 악순환을 풀어낼 길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은 서로 동등한 자격에서 협상에 임하고 이를 통해 서로 주고받는 시스템을 배울 필요가 있다"며 "그래서 남북 당국 간 회담이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여권 일각에선 이날 실무접촉에 이어 오는 12일로 예정된 남북 장관급 회담까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관련 후속조치 및 추가 현안 논의 등을 위해 "정부가 남북한 간에 상시 대화 체제를 구축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여권 관계자는 "과거엔 남북 당국 간 회담에서의 주요 합의가 사실상 비선에서 논의된 사항을 추인하는 형태가 되면서 이런저런 부작용을 일으켰다"며 "그러나 당국 간 회담과 함께 남북 간의 상시 대화 채널이 공식 운영된다면 그런 비선 개입의 여지를 줄이고 남북관계의 투명성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도 이미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서울~평양 간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를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대화란 것은 항상 상대방이 있는 문제"라며 "결국엔 북한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