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섭 서울대 교수·헌법학

대한민국에 새 정부가 출범했을 때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하면서 우리를 상대로 호전적 적대감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표출했다. 김정은 체제의 강화를 위하여 한 짓이든 내부 권력투쟁에서 일어난 일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핵으로 대한민국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단계로 몰아간 것이 심각한 것이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운명은 완전히 북한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한반도는 상시적인 전쟁 상황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북한이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이상 북한과의 접촉은 무의미하고 그들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과 통일전선 전술에 이용당할 뿐이다. 통일은 대한민국을 내부적으로 분열시키고 핵으로 군사적인 공격을 하여 한반도를 북한식 사회주의국가로 만드는 북한식 통일만 남게 된다.

북한이 한반도를 공포와 전쟁의 위협으로 몰아갈 때에도 우리 정부는 이에 단호하게 대처하면서도 북한이 태도를 바꾸어 진정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대화하자면 언제든지 할 수 있고, 북한에 대한 좀 더 진전된 지원도 하겠다고 하였다. 이미 과거 사회주의 독재를 유지하던 동구의 국가들이 모두 체제를 전환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질서를 기본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고 있고, 아랍 지역에서도 내부 종교적인 대립으로 갈등을 겪고 있지만 독재국가를 청산하고 자유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민주화 투쟁이 확산하고 있다. 전 지구적 민주화의 마지막 단계이다.

그러나 이에 유일하게 예외로 존재하는 것이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은까지 3대에 이어 독재 권력을 세습하고 있는 북한의 군사독재 체제이다. 전 세계에서 누가 봐도 북한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그간 북한 내부에서도 이러한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권력 유지에서도 어려울 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을 억압과 고통 속에서 죽게 만들 뿐이라는 인식이 부분적으로 생겨났다. 러시아나 중국이 체제를 전환하여 가듯이 북한을 개방하고 동시에 개혁해나가야 한다는 흐름이다. 이제 북한 주민 가운데도 북한 체제가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 늘고 있고, 대한민국의 발전상에 대해서도 상당히 알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내세워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전략이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 의하여 저지당하고, 국제사회와 강대국들의 강한 비판에 직면하자 일단 우리와 대화를 하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과 북한이 한반도의 통일을 위하여 조금씩이나마 나아가 만든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금강산관광특구를 개발하여 민족 공동의 자산으로 삼으려고 한 노력을 무화(無化)시키는 것이 북한으로서도 큰 손실을 가져오는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군사적 공격으로 한반도를 전쟁의 위협으로 몰아가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궁극에는 북한이 멸망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임도 깨달았을 것이다.

이번에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장관급회의에서는 우선 북한이 호전적이고 군사적인 태도를 포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든 금강산관광을 재개하든 아니면 남북한 간의 더 큰 사업을 논의하든 그것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서로 간에 신뢰가 구축되지 않고 상대방을 속이고 이용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 일이 제대로 진척되기는 어렵다. 북한이 대한민국 내부를 분열하는 데 늘 동원하는 '민족'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이나 러시아로 연결하는 가스관 공사나 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되는 철도의 개통 등을 모두 대한민국과 먼저 상의하고 공동으로 사업하면 된다. 이산가족 상봉도 더 이상 정치적 상품으로 이용하지 말고 상시로 만날 수 있는 길을 트면 내일이라도 바로 실행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이다.

그동안 한반도 통일의 문제는 남북한이 정치적 메뉴로 이용한 측면이 적지 않다. 민주화 이후 정부마다 출범 이후 1년 반쯤 되면 새로운 정책들이 지지부진해지고 집권세력의 내부에서 각기 자리 챙기고 이권에 개입하면서 국정 운영이 난조에 빠지면 통일 문제를 내세워 집권 후반기를 유지하는 것이 공통의 패턴이었다.

이와 달리 이번에는 진정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새로운 접근을 하는 계기를 마련하여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은 중국이나 일본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남북한이 공동으로 확인시키고, 남북한이 진정으로 통일을 원한다는 것도 국내외적으로 분명히 하여야 한다. 우리 정부도 통일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하고, 신세대를 포함한 국민에게 자유민주체제로의 통일의 중요성을 확신시키는 일을 용의주도하게 전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