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조선 개국 전 이방원이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쓴 시조 '하여가'이다. 언덕배기를 따라 뻗은 칡덩굴을 뜻하는 '드렁칡'에 글쓴이의 눈이 간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제일성(第一聲)은 "과거 반세기 동안 이어진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화해와 대탕평으로 끊겠다"는 것이었다.

서어나무를 왼쪽으로 감아오른 등나무.

일상에 흔히 쓰는 갈등(葛藤)이란 단어는 칡(葛)과 등나무(藤)의 싸움질을 뜻한다. 둘은 모두 덩굴식물이며 같은 콩과식물이다. 칡은 예부터 구황식물로 썼고, 갈근과 갈분으로 차와 국수를 해먹는다. 등나무는 한더위에 그늘을 주고, 줄기로 지팡이나 의자를 만들며, 등꽃은 말려 부부 금실 좋으라고 신혼 금침(新婚衾枕)에 넣어준다고 한다.

왜 칡과 등나무가 불협화음의 상징이 됐을까. 칡과 등나무를 한자리에 심어 큰 지주목(버팀목)을 타고 오르게 해보자. 칡 줄기는 옆에서 보아 오른쪽으로 돌돌 감아 오르고, 등나무는 반대로 친친 감싸며 돈다.

칡덩굴은 위에서 보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타래처럼 말아 꼬니 우권(右券·오른돌이)이고, 등은 시계 방향으로 외틀어 오르니 좌권(左券·왼돌이)이다. 자연 상태에서 칡과 등나무는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칡과 등나무가 말을 할 줄 안다면 "왜 떨어져 있던 것을 붙여서 싸우게 하느냐"고 원망할 것이다.

갈등이란 칡넝쿨과 등나무 덩굴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것과 같이 ①서로 복잡하게 뒤엉켜 적대시하며 일으키는 분쟁 ②상치되는 견해 따위로 생기는 알력 ③정신 내부에서 각기 다른 방향의 힘과 힘이 맞부딪치는 마찰을 이르는 말이다. 불화·상충·충돌이 곧 갈등(conflict)이다.

식물의 혈투 또한 동물계 못지않다. 이렇게 칡과 등나무는 죽살이치면서 서로 엇갈리게 뒤틀려 상대를 거침없이 짓누르고, 얼기설기 똬리 틀어 자리 다툼을 한다.

그 용틀임은 해가 갈수록 더해간다. 더불어 나팔꽃, 메꽃, 박주가리, 새삼, 마 등은 우권이고 등나무나 인동, 환삼덩굴은 좌권이지만 더덕처럼 '양손잡이'도 있다.

이렇듯 덩굴식물은 종류마다 정해진 방향으로 칭칭 처매니 방향을 일부러 바꿔놓아도 다시 원래 제 방향대로 자리를 잡는다. 얽혀진 칡과 등나무도 정해진 방향으로 돌다 보니 서로 짓누르게 된다. 그래서 두 식물은 자연상태에서는 대부분 함께 있지 않고, 한자리에 있더라도 죽이지 않고 각자 제 몫을 하면서 살아간다.

칡을 오른손잡이라 치면 등나무는 왼손잡이가 되겠는데, 이처럼 식물의 줄기 감기 말고 사람도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있다. 전체적으로 오른손잡이가 90% 남짓이지만, 왼손잡이를 보면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고 일란성 쌍둥이는 왼손잡이가 될 확률이 더 크다고 한다. 그렇듯 연체동물의 고둥이나 달팽이도 우권이 대부분이며, 원자(原子)·분자(分子)도 오른쪽으로 휘말려 있고, 이중나선(二重螺旋)구조인 DNA도 97%가 오른쪽으로 감는다.

이렇게 세상은 온통 오른손잡이 차지다. 왜 오른손잡이가 많은가에 대해서는 아직 이유를 모른다. 무서운 유전자의 명령 탓이렷다. 과학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신비가 많다.

'갈등'이란 말에 사촌뻘인 두 콩과식물이 오롯이 숨어 있었으니, 이들의 생태를 깊이 살피어 환하게 통달하신 선현들의 지혜로움과 통철(洞徹)함에 아연 놀랄 뿐이로다. 언제까지 척지고 살 것인가. 모름지기 갈등의 고리를 어서 풀어 끊고 화합·조화·협력하며 상생할 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