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1면 광고란에 '지급경고(至急警告·매우 급하게 경고함)!'라는 큰 제목이 등장했다. 1920년 8월 1일, 독일제 바늘을 수입·판매해 폭발적 인기를 누리던 세창양행 (世昌洋行)은 조잡한 '짝퉁 바늘'들이 나돌자 위조 업자들에게 엄중 경고하는 광고를 조선일보에 3단 크기로 냈다. 상표권을 도둑맞은 게 얼마나 화가 났던지, 이 회사는 똑같은 광고를 연 4일간 계속 실었다. 광고의 테두리 전체엔 톱날 모양을 삐죽삐죽 그렸다.
이 땅에 근대 문물이 첫선을 보일 때부터 히트 상품마다 가짜나 유사품이 활개쳤음을 광고란은 말해 준다. 새로운 옷감이 들어오면서 투박한 조선 바늘만으로는 바느질이 불편하던 때에 수입된 가늘고 정교한 독일제 바늘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위조품까지 활개를 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朴家粉)도 '간상배(奸商輩·간교한 상인들)가 박가분 모양과 가티 제조 발매'한다며 '속지마시압'(조선일보 1929년 7월 9일자)이라고 광고했다. 치명적 학질(瘧疾·말라리아)의 치료제 '금계랍(金鷄蠟)'(1929년 3월 29일자)이나, 소화제 '활명슈'(1929년 6월 29일)는 진품 구별법을 광고마다 강조했다. '짝퉁' 논란에 모피가 빠질 수 없다. 경성 모물(毛物)동업조합은 토끼털을 여우털로 속인 저질 모피 제품에 주의하라는 특별급고(特別急告)를 냈다(1924년 11월 18일자). 종기에 붙이는 조고약(趙膏藥)은 가짜에 속지 말라는 광고를 1922년 12월 4일부터 이듬해 초까지 줄기차게 실었다.
피해 회사들은 경고 광고에서 위조 업자들에 대한 구체적 요구 사항을 밝히기도 했다. '세창표 바늘'은 '부덕(不德)한 상인'들에게 '본년 8월 21일까지 시장에 재(在)한 위조바눌 전부를 회수하야 각자 자기의 상표를 밧구어 부치라'며 가짜가 또 발견되면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1920년 8월 1일자). 피해 회사가 당국의 조치만 지켜보는 데 머물지 않고 매우 적극적으로 위조업자들에게 경고하고 후속 조치를 요구한 것이다. 세창양행은 구한말 독일인 마이어(H E Meyer)가 설립한 회사였기에 상표권 침해에 더욱 단호히 대응했다. 위조 업자가 진품 제조사의 관용으로 처벌을 경감받은 듯한 내용의 광고도 있다. '별표 고무신'과 유사한 '칠성표 고무신'을 팔다가 걸린 한 업자는 진품 제조사를 상대로 '준엄한 처분을 당연히 감수할 바이오나 귀사(貴社)의 관대한 처분 하에 차(此)를 용서하여 주신 후의는 깁히 감사'한다는 '사죄광고'를 냈다(1929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