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은 성공 못 해요. 분노가 있어야 일을 하죠." 영화 속 그녀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 85세,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는 그렇게 '나를 움직인 원동력은 사실 분노였다'고 말한다.
지난달 30일 막을 내린 제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8개국에서 영화 110여편이 출품됐다. 이 중에서도 관객 사이에 큰 화제를 모았던 영화가 다큐멘터리 '노라노(Nora Noh)'다. '우리나라 패션 디자이너 1호'로 기록될 디자이너 노라노(본명 노명자)를 2010년부터 3년 동안 따라다니며 카메라에 담았다. 감독 김성희(38)는 노라노를 통해 '한 번도 도망가지 않았던,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했던 여성'의 모습을 그린다.
영화는 노라노의 패션 인생 60년을 정리하는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부터 보여준다. 전시 기획자로 참여한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은 "코코 샤넬, 소니아 리키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얘기하면서 정작 내 나라 디자이너는 모르는 현실이 슬퍼서 전시하자고 찾아갔다"고 말한다.
노라노의 어머니는 경성방송 초대 아나운서였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노라노에게 양장을 입혔다. 비극은 17세부터였다.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노라노는 '살기 위해'결혼했지만 매서운 시집살이 끝에 이혼당한다. 이름을 '노라'라고 지은 것도 이때다. 입센의 '인형의 집' 주인공 이름을 딴 것. 노라노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말한다.
1947년 미국 유학을 떠났고 1952년 서울 명동에 의상실 '노라노의 집'을 열었다. 펄 시스터스·윤복희·최윤희·엄앵란의 의상이 그녀 손에서 나왔다. 1970년대엔 미국 메이시스백화점 쇼윈도에 그녀 옷이 걸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노라노는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 "난 그저 내 인생을 살았을 뿐이야."
본지와 통화에서 노라노는 "옷 만드는 일만 했던 내가 영화 주인공이 돼서 좀 쑥스럽다"고 했다. "여자라고 위축될 필요 없다고, 꼿꼿하게 살자고 마음먹고 한평생 지냈어요. 그것만으로도 영화가 된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