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라면 좀 주세요. 황태라면, 최루탄라면, 반합라면, 카레라면, 짬뽕라면, 육개장라면 각각 하나씩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라면 전문점 '맛좀볼래'. 테이블에 둘러앉은 남녀 6명이 떠들썩하게 라면을 주문했다. 황태를 넣어 시원하게 국물 맛을 낸 '황태라면', 최루탄처럼 매운맛이 알싸한 '최루탄라면', 군대 개인 취사 용구인 알루미늄 반합에 끓인 '반합라면'…. 각자의 개성과 식성만큼 선호하는 라면도 제각각이다.
"이 집 메뉴판에 있는 이색 라면들은 다 한 번씩 먹어봤는데, 육개장라면이 해장에 그만이야." "무슨 소리! 속 푸는 덴 황태라면이 딱이지. 국물이 진국이거든." 면발을 후루룩 넘기면서 품평을 늘어놓는 이들은 동호회 '라면천국' 회원들. "라면 냄새만 나면 자다가도 눈이 번쩍 뜨인다"는 사람들이다.
1999년 9월 생긴 이 동호회 회원은 현재 6만여명이다. 운영자 최용민(44·팔도라면 마케팅1팀장)씨는 "어릴 때부터 삼형제가 라면 하나 끓여놓고 싸우면서 먹었을 정도로 라면이 좋았다"며 "라면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기호식품이지만 정작 라면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고, '라면=나트륨 덩어리'라는 오해가 많아 동호회를 만들었다"고 했다. 최씨는 한국야쿠르트에서 '뉴트리면'과 '왕뚜껑' 개발에 참여했고, 이경규씨가 방송에서 출품했던 '꼬꼬면'을 상품화하기도 했다. 그는 "새로운 라면을 개발하는 일을 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고 조언도 구하고 싶었는데, 동호회 덕을 많이 본다"고 했다.
회원은 초등학생부터 60~70대까지 연령대가 골고루 퍼져 있고, 직업도 회사원·주부·공무원·요리사 등으로 다양하다. 동호회 스태프인 조윤근(44·한국장애인연맹 홍보국장)씨는 "어떻게 하면 라면을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동호회를 찾았다"며 "카페에는 라면을 실생활에서 제대로 끓일 수 있는 방법이 취향별, 연령대별로 다 있다"고 했다. 동호회 게시판엔 회원들이 올린 '라면 맛있게 끓이는 나만의 비법' '새로 출시된 라면 시식 후기' '전국 곳곳의 라면 맛집 소개' 등의 글들이 가득하다. '짜장라면 맛있게 끓여 먹는 방법' '분식점 라면 맛내기 비법' 등의 정보가 맛깔스러운 사진과 함께 올라 있다.
이날 모인 회원들은 "라면은 서민 음식이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데다 가격도 싸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라면 얘기로 시작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성애(23·중앙대 건축공학과 4학년)씨는 "크게 돈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라면 애호가들끼리 편하게 가족처럼 만나 취향을 공유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라면천국' 정기 모임은 분기별로 한 번씩 열린다. 지난해 12월 신당동 횟집에서 열린 송년 모임에는 전국 각지에서 40여명이 모였다. 조윤근씨는 "테이블마다 각기 다른 재료를 넣고 라면을 끓여서 갑자기 '라면 맛 대결' 분위기로 이어졌다. 우리 동호회 모임은 해외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인기"라고 했다. 수시로 '라면 번개'도 열린다. 널리 알려진 라면 전문점뿐만 아니라 동네 작은 수퍼까지 '라면을 끓여서 파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맛을 보고 품평회를 한다. 그동안 전국의 라면 맛집 100여곳을 탐방했고, 라면 공장 견학도 수차례 다녀왔다. 매년 11월에는 '라면 포럼'도 연다. 최용민씨는 "포럼은 기존 라면 업체들도 진행해보지 못한 것으로 우리가 아이디어를 내고 시작했다. 농심, 오뚜기, 팔도 등에서 라면 전문가를 섭외해 강연을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지난 2000년부터는 '아름다운 라면 봉사(아라봉)' 활동도 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전국 20여개 복지관을 찾아 라면 급식을 제공한다. "회원들이 얼마씩 갹출해서 계란, 파 등 부재료를 마련해 우리가 직접 개발한 레시피로 라면을 끓여 드립니다. 어르신들이 드실 라면에는 닭고기로 육수를 우려내기도 하고, 아이들에겐 햄을 넣어서 맛을 내기도 하고요. 어르신들이 '지금까지 먹어본 라면 중 최고로 맛있다'고 좋아하실 때마다 보람을 느끼죠(운영자 최씨)."
이날 모인 회원들에게 '라면 맛있게 끓이는 비법'을 물었더니 "취향 따라 다르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최씨가 "국물을 중요시해서 끓일 때 면부터 넣고 수프를 나중에 넣는다"고 하자 조씨가 받아쳤다. "저는 면발이 꼬들꼬들한 게 중요해요. 그래서 수프를 먼저 넣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면을 넣지요. 면발이 불지 않고 꼬들꼬들하려면 젓가락으로 계속 들었다 놨다 하면서 면을 괴롭혀야 돼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