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레바논 원정 경기에서 관중으로부터 레이저 공격을 받고 있는 골키퍼 정성룡의 모습.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두 얼굴의 도시다. 불안한 정세 탓에 베이루트 거리 곳곳에선 거대한 장갑차와 실탄이 든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베이루트의 명소로 꼽히는 '비둘기바위' 쪽으로 나가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둠이 내리자 지중해를 접한 이 지역의 고급 식당들엔 사람들로 넘실거렸다. 바다를 보며 여유 있게 저녁 식사를 즐기는 그들을 보고 베이루트의 급박한 상황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이중성은 레바논 사람들에게도 통하는 얘기다. 레바논인들은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붙임성이 좋다. 한국 취재진이 지나갈 때면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청이 쇄도했다. 레바논을 찾아줘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경기장에만 들어가면 돌변한다고 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여러 중동 나라 중 관중이 가장 극성맞은 곳이 레바논"이라며 "2011년 레바논이 한국을 2대1로 꺾었을 당시엔 홈 팬들이 폭죽을 엄청나게 터뜨렸는데 그에 맞춰 몇몇 사람들은 하늘에 대고 실탄을 발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4만8000여명을 수용하는 레바논의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은 홈 팬들의 광적인 응원으로 '원정팀의 지옥'이라 불린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이 레이저 공격이다. 2011년 3차 예선 때 레바논 팬들의 무차별 레이저 공격에 시달린 골키퍼 정성룡은 "그날 이후 비슷하게 생긴 볼펜만 봐도 레이저가 생각날 정도"라며 "눈에 레이저를 정통으로 맞으면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근호는 "많은 중동 원정 경험이 있지만 당시 레바논 원정은 레이저 공격 때문에 정말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변수는 식어버린 레바논의 축구 열기다. 3차 예선 선전에 이어 최종 예선까지 진출하며 뜨겁게 달아오른 레바논의 축구 열기는 최근 성적 부진과 자국 선수들의 승부 조작 파문으로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이번 경기에 팬들이 얼마나 찾아올지도 미지수다. 다만 현지 시각으로 오후 8시 30분에 경기가 열리기 때문에 직장과 학교를 다녀온 베이루트 시민이 대거 경기장을 찾을 수도 있다.

레바논의 한 교민은 "레바논 팬들은 보통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자국팀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며 스트레스를 푼다"며 "한국이 초반부터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홈 텃세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