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뿐만 아니라 역사·음악·미술·철학 등 분방한 글쓰기로 이름난 김정환(59·사진) 시인이 신작 시집 '거푸집 연주'(창비 출간)를 펴냈다.

시대와 인물에 대한 성찰도 성찰이지만 이번 시집에서는 엄격한 클래식 애호가이자 열정적인 번역가로서 자신의 얼굴도 주저 없이 공개한다.

바그너와 멘델스존, 헨델, 하이든, 바흐의 삶을 '음악의 세계사, 그 후'라는 제목으로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내 이빨은 하루 종일 달그락대며 바야흐로/ 무너지는 중이지만/ 내 귀의 나이는 뭔가 긁히는 잡음까지 걸러낸다'고 자부하고, 셰익스피어 전집과 셰이머스 히니, 헤르베르트, 로르카 등 세계 시인들의 전집을 번역하면서 "폴란드어 낱말/ 하나하나 번역하다가 음악과 미술이 만국 공통 언어이듯/ 시는 만국 언어 공통의 문법"(폭설의 아내, 안팎과 그 후)임을 기쁘게 선언한다.

그는 문단에서 "이윤에도 성공에도, 심지어 가독성에도 무심한 사람, 지독하게 무심해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꼽힌다. 후배 시인 진은영은 "장사꾼도 혁명가도 번역가도 예술가도 늘 계산을 한다. 이 시집에는 없는 것 없이 모든 게 있지만, 유일하게 계산이 없다"면서 "우리 모두는 그 앞에서 자신의 전생애와 기필코 직면하고 그 안에서 각자의 서사를 재구성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거푸집'은 만들려는 물건의 모양대로 속을 비운 틀. 변화무쌍 자유자재로 그가 빚은 거푸집 안에서 시인의 사유와 당신의 자유가 행복하게 만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