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니언(Technion) 공대와 공동 연구를 하느라 얼마 전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스라엘은 방문할 때마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극과 극'의 나라다. 텔아비브는 그 어느 지중해 도시에 뒤지지 않는 젊음이 넘치는 도시다. 멋진 바닷가 카페에 앉아 자유롭게 산책 나온 동성연애 커플들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중동 한복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차로 1시간만 가면 토요일에는 곳곳에 운전마저 금지된 역사적 도시 예루살렘이 나온다. 여기서 또다시 15분을 가면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이다. 그리고 서북쪽으로 1시간 반 가면 레바논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이스라엘 최고 공업 도시 하이파가 나온다. 예루살렘은 기도하고, 텔아비브는 놀고, 하이파는 일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요즘 '창조경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스타트업 네이션(Startup Nation)'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야말로 진정한 창업과 혁신의 나라라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그들의 창업과 혁신 마인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창업을 위한 뇌는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일까?
잘 알려져 있듯 이스라엘 창조경제의 핵심 중 하나는 '안보'다. 제2차 레바논 전쟁 당시 수많은 로켓이 하이파 시내에 떨어졌고, 그 경험이 테크니언 대학을 중심으로 '아이언 돔(Iron Dome)'과 '애로 미사일(Arrow Missile)' 같은 근거리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자체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 벤처 창업자 대부분이 '8200 특수 첩보부대' 출신이다. 군 복무 기간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전 세계 젊은이 대부분과는 달리 8200 출신 이스라엘 친구들은 그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고 자유로웠던 시절이라고 이야기한다.
군 복무 시절이 가장 자유롭다? 말이 안 될 것 같지만, 그게 바로 8200의 특징이다. 고등학교 졸업생 중 이공계 최고 성적 학생들만 뽑아가는 이 부대는 마치 창업 사관학교 같은 역할을 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최첨단 지식과 장비를 제공해주고, 대학보다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실패의 두려움 없이 아직 누구도 풀지 못한 국방 기술 문제들을 풀게 한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의 Elta사 AESA 레이더, 그리고 이란의 핵무기 실험 장비를 파괴했다는 전설적 stuxnet 컴퓨터 바이러스들이 그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졌다. 4~5년이라는 긴 복무 기간에 독립적 마인드와 빠른 결정 프로세스에 적응된 8200 출신들은 느리고 관료주의적인 대기업보다 대부분 창업을 선호한다. 코앞에 떨어지는 미사일을 자기들이 개발한 기술로 막을 수 있다는 '성공 경험'을 한 그들이 자그마한 회사의 파산을 두려워할 리 없다.
물론 '안보'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70~80세의 어른들은 나치 독일이라는 '치명적 위험'을 막연히 피하거나 묵살하기만 하다가 결국 유태인 수용소로 끌려간 친척들을 기억한다. 독립적 인생이 막연히 두려워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우산' 밑으로 숨으려는 대한민국의 '현실적' 태도와는 달리 이스라엘은 '완벽한 안전'은 어차피 존재하지 않으며 나의 인생과 나의 행복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초(超)현실적' 마인드가 있기에 이스라엘식 창조경제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