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시에 사는 이전선(48)씨가 하는 일은 보험설계사와 비슷하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매월 돈 내는 일에 가입하라고 설득한다. 등산모임, 계모임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빠짐없이 쫓아다니고, 여수·목포 등 장거리 출장도 마다 않는다. 그가 2009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받아낸 약정은 총 2080명에 달한다.
보험설계사가 이 정도 실적을 올렸다면 억대 연봉을 받으며 '보험왕'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억대 수익은커녕 오히려 자기 돈을 쓰며 사람을 만나러 다닌다. 이씨는 보험을 파는 게 아니라 기부를 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발표한 '기부 전도왕' 5명에 들었다. 이 5명이 기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사람은 2500명이 넘는다. 이들은 "억대 연봉 대신 우리는 '억대 기쁨'을 받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2010년 한 가난한 집 아이가 많은 이의 도움을 받아 삶이 달라진 걸 보고 '기부 전도사'를 업(業)으로 삼았다. 이듬해에는 23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 일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각종 모임에서 '기부 특강'을 하고, 사람들에게 기부에 따르는 세제 혜택과 기부가 자녀 교육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등도 상담해줬다. 그는 "도움이 절실한 아이들이 정말 많은데 나 혼자는 다 못 돕기 때문에 이 일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부들을 주 타깃으로 '다단계 판매'처럼 기부 전도사가 생겨나도록 하고 있다. 그는 "엄마가 가정에선 대장 아니냐"며 "주부 1명을 만나면 기부자가 최소 3명은 생긴다"고 말했다.
선박부품회사를 운영하는 신윤은(47·부산)씨와 자동차공업사 사장 김금탁(50·제주)씨는 어린 시절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한 아이를 돕고 싶어 기부 전도왕이 됐다. 신씨 어머니는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그를 길렀다. 김씨는 유년기에 부모를 잃고 14세 때부터 정유소와 공사장 등을 전전했다. 이들은 "가난한 아이들의 마음을 내가 잘 안다"며 "죄 없는 그들을 사회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212명에게, 김씨는 80여명에게 정기 기부 후원 약정서를 받았다. 신씨는 "'반(半)강제 권유'가 기부 전도의 비결"이라며 "일단 '행복 값이라고 치고 한 달에 1만원씩만 기부하라'고 하면 기부의 'ㄱ'도 모르던 사람이 얼마 지나지 않아 '더 기부할 데 없느냐'고 물어온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동차 수리비를 할인해주면서 그 돈을 기부하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는 "손님들도 수리비 낼 돈을 좋은 일에 쓰는 거니까 흔쾌히 기부를 시작한다"고 했다.
서울 관악농협 전 직원 240명 중 100명은 어린이재단 정기 기부자다.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기부와 선행 이야기를 전하는 박준식(73) 조합장의 설득 덕분이다. 3월 부임한 조성필(61) 이사는 박 조합장의 권유로 가입한 어린이재단에 매달 1만5000원씩 기부하기로 약속해 관악농협 100번째 정기 기부자가 됐다.
김성학(47·충북 청주)씨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기부 저금통과 후원 약정서가 놓여 있다. 2007년부터 기부를 시작한 김씨는 지금까지 기부자 100여명을 모았고 올해만 손님 20명이 그의 가게에서 기부를 시작했다. 학부모 모임에선 "기부만큼 애들 교육에 좋은 일이 없으니 애들 이름으로 5000원이라도 기부를 시작하라"고 권유하고, 골프 연습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골프를 가르쳐 주며 "레슨비 대신 아이 한 명 도와달라"고 한다. 그는 "2008년 처음 후원했던 9세 아이로부터 '저도 커서 아저씨같이 남을 돕는 사람이 될게요'라고 쓴 편지를 받고 기부 전도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