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자왈(子曰) 부모재(父母在)어시든 불원유(不遠遊)하며 유필유방(遊必有方)이니라."
토요일이었던 지난달 25일 오전 10시, 서울 노원문고(노원구 상계동) 세미나실. 심규하 훈장의 선창이 끝나자, 초·중학생 9명이 같은 문장을 따라 읽기 시작했다. 음독(音讀) 후엔 뜻 풀이가 이어졌다. "공자가 말하기를 부모가 살아 계시면 멀리 나가지 않으며 먼 곳에 갈 땐 반드시 그 행방을 알려야 하느니라." 이곳에선 매주 토요일 '노원서당'이란 이름으로 한문 강좌가 진행된다. 지난 2010년 말 서점 내 공간을 활용해 첫선을 보인 이래 지금껏 100명 이상의 초·중학생이 이곳을 거쳐갔다.
二.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4동 주민자치센터 내 노인정에선 주 2회(화·목) 90분씩 초등 저학년생 대상 한문 강좌가 개최된다. 공식 명칭은 '산드래미서당'. 올 2월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문을 열었다. 기획을 맡은 매탄4동 주민자치센터는 수원향교에서 예절·한문을 가르칠 훈장 2명을 초빙하고 노인정 내 유휴 공간을 서당으로 꾸몄다. 영통구청도 힘을 보탰다. 수업은 전액 무료. 3일 현재 수강생은 12명이다.
◇인성교육 강조되며 인기… 초등생 수강 활발
‘전통 한문교육 기관’ 서당이 인성 교육 열풍을 업고 도심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노원서당을 기획한 진성수 전북대 철학과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청소년 단체에서 재능 기부 활동을 하며 청소년을 여럿 만났는데 갈수록 학생들의 인성이 팍팍해지더라”며 “고전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중 자연스레 서당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 묵2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지난달 말 ‘먹골서당’을 만들었다. 지난해 말 실시한 주민 대상 설문조사에서 ‘전통 문화 체험과 예절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학부모의 수요가 높았던 데 착안한 프로그램이다. 산드래미서당 운영 담당자인 김민지 매탄4동 주민자치센터 주무관(주민자치과) 역시 “인성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관내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서당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자 교육에 대한 관심도 서당의 부활을 견인했다. 서당 수업은 (급수 획득에 초점이 맞춰지는 한자 학원과 달리) 학습자가 고전을 통해 한자의 의미를 서서히 깨닫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노원서당에서 만난 용치수(서울 동일초등 6년)군은 “책이나 신문 속 한자를 막힘 없이 읽고 싶어” 서당 문을 두드린 경우. “여기선 학원처럼 딱딱하게 가르치지도, 무조건 외우라고 시키지도 않아 좋아요. 과제도 많지 않아 훈장 선생님 말씀을 부담 없이 듣고 따르죠.” 경기 고양시에서 운산서당을 운영하는 강태립 훈장은 “우리말 단어의 약 70%는 한자어인 만큼 국어를 잘 이해하려면 한자어 공부는 필수”라며 “다행히 최근엔 이 같은 점을 인식한 학부모가 늘면서 서당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수강생은 (중고생에 비해 학습 부담이 비교적 덜한) 초등생에 집중되는 편이다.
◇요가·다도·서예… 고전 강독에 '신요소' 결합
요즘 서당은 전통적 서당과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훈장은 더 이상 한복을 입지도, 회초리를 들지도 않는다. 학생 역시 무릎 꿇고 벼루에 먹 갈아 글씨 쓰는 경우는 드물다. 커리큘럼에도 차이가 있다. 예전 아이들은 틈날 때마다 집 근처 서당을 들락거렸지만 최근 선보이는 서당은 정확한 시간표와 교육 과정에 따라 운영된다. 김민지 주무관은 "대부분의 아이가 학원 수강 등으로 바빠 사전 공지된 시간에 참석 가능한 학생만 신청한다"며 "질의 응답이 이뤄지거나 수강생 간 토론이 진행되는 등 수업 풍경은 다양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운영 주체에 따라 수업 내용이나 방식은 조금씩 달라진다. ‘도토리서당’을 운영하는 서울 서초구립 반포도서관은 고전 강독과 요가가 결합된 강좌를 선보였다. 먹골서당은 ‘이야기로 배우는 사자성어 교실’과 ‘다도(茶道)교실’을 각각 개설했다. 경기 과천향교가 운영하는 충효서당 강좌는 서예 수업을 겸한다.
프로그램 종류에 따라 수업 일수와 수강료 차이도 존재한다. 강태립 훈장은 “우리 서당은 1대1 교습이 원칙이지만 다른 곳에선 소규모 그룹 또는 학교 수업 인원 규모로 강좌를 진행하기도 한다더라”며 “수강료의 경우 예전엔 학부모가 가정 형편을 고려해 형편대로 자유롭게 지불했지만 요즘은 운영 기관이 어디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진성수 교수는 “형태도, 성격도 조금씩 바뀌었지만 ‘세상살이의 지혜를 일깨우는 공간’이란 서당의 고유 전통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