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정부·기업·노조 간 합의를 통해 실업과 불황의 타결책을 찾아낸 모범 국가다. 발케넨더 전(前) 네덜란드 총리는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네덜란드는 대부분의 영토가 바다 높이보다 낮은 간척지여서 국토가 물에 잠길 위협에 항시 놓여 있었기에 국민 모두가 절박한 위기의식을 갖고 합심해서 대처해온 전통이 있다"며 "네덜란드가 경제 위기를 맞을 때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를 극복해온 것은 이런 전통 덕분이다"고 말했다.

대표적 사례가 1982년 '바세나르협약'을 통해 노조는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기업은 근로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는 대타협을 이뤄낸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도 공무원 임금을 삭감하고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면서 고통의 짐을 나눠서 졌다. 당시 네덜란드는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실업률은 10%대로 뛰어오르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세나르협약을 발판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유럽의 경제 우등생으로 떠올랐다.

한국노총과 경총, 고용노동부가 30일 '노·사·정 일자리 협약'을 체결했다.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경기 침체로 인한 청년 실업(失業)과 고용 불안을 해결하고, 2017년까지 고용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합의안에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와 정년(停年) 60세 연장을 위한 임금피크제 도입,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 개편 등 그럴듯한 제목들이 달려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떻게 고통을 나눠서 지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실천 방안 없이 '노력한다'는 선언적 내용뿐이다. 더욱이 우리 경제의 핵심 산업 분야를 쥐고 흔드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주축인 민주노총은 아예 참여하지도 않았다. 노·사·정 고통 분담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빠진 걸 어떻게 '합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지금의 한국 경제를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다"고 한다. 위기가 닥치는데도 그걸 모르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사·정 3자가 이런 위기에 대한 인식의 공유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이번 합의는 윗선에 잘 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형식적 성과주의의 표본이다. 정부는 모양뿐인 노·사·정 합의만 내놓는 것보다 우리 경제에 밀려오고 있는 위기의 절박성을 노동계에 설득해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노력부터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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