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가 시중 은행들에 더욱 공격적으로 대출을 늘리라고 주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하루히코 총재는 26일 도쿄에서 열린 학자들과의 모임에서 "물가 침체(디플레이션)를 극복하는 과정은 금융시스템이 활기를 회복하는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유례 없는 양적완화(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자금을 푸는 것)를 펴고 있는 일본은행은 시중 은행들이 안전한 국채에서 주식이나 외환표시 자산 등 위험자산으로 투자를 늘려야 금융시장이 활기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고 WSJ은 분석했다. 구로다 총재는 "일본 은행들은 막대한 부실대출 채권을 짊어지고 있던 1990년대 말과 달리 지금은 대출을 늘릴 여력이 충분하다"며 "금리가 상승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충격에도 버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 4월 은행들의 대출 금리는 1년 전보다 2.1% 올랐다. 2009년 7월 이후 가장 크게 오른 것이다. 구로다 총재는 "최근 은행들의 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인수합병(M&A), 부동산 및 천연자원 거래 등과 관련돼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대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발언은 일본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1년여 만에 1%를 웃돈 후 나온 것이라 더욱 주목된다. 장기 국채 금리가 계속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일본 금융시장이 교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 22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경제 상황이나 물가 전망과 달리 장기물 국채가 치솟는 경우를 막기 위해 유동적인 시장 조작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금리가 1~3% 포인트 인상되더라도 금융시스템 불안에 대한 큰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경기가 개선돼 주가가 오르면 은행 실적이 개선될 뿐 아니라, 금리 상승으로 은행 대출에 따르는 수익도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 적자에 대해선 우려했다. 그는 "재정 개혁과 성장 전략을 적절히 시행하는 것은 정부로선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재정 상황은 선진국들 중에선 최악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규모가 200% 안팎이다. 일본 정부는 다음달 중 친(親)성장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가을쯤에는 내년 4월 소비세 인상을 감행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모두 재정 여건과 직결되는 사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