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계(拜啓) 김대중 선배님.
저는 올 1월에 아사히신문을 그만두고 3월부터 한국말을 공부하면서 서울에 잠시 체재하고 있습니다. 김 고문의 조선일보 4월 30일자 칼럼 '일본의 민얼굴'을 여기서 읽고 가슴이 쓰려 견딜 수 없어 이렇게 붓을 들기로 했습니다.
먼저 저는 김 고문의 일본에 대한 깊은 우려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아베 신조 총리의 침략 관련 발언, 이어진 정치인들의 과격 발언에 대해 저도 많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국가로서 과거의 침략에 대해 명백한 반성과 사과를 표시했다는 기본 입장은 지금도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1995년에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가 표명한 전후 50년 담화(무라야마 담화)가 그것입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諸國)에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나는 의심할 바 없는 이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재차 통절한 반성의 뜻을 나타내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표명하겠습니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공식으로 발표한 국가 의지이고 그 후에도 모든 내각이 답습해온 것입니다.
아베 총리가 이 담화에 소극적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김 고문이 쓰셨듯이 일본이라는 나라가 "(아베 총리를) 앞세워 2차대전 침략 사실 자체를 간접적으로 부인하며 식민지 정책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한다면 과언입니다. 지금도 많은 일본 국민이 무라야마 담화를 지지하고 과격 발언을 한 정치인들에게 강한 비판을 퍼붓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물론 앞으로 불안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런 만큼 오히려 김 고문께서는 모든 일본인에게 분노를 터뜨리지 마시고 "나는 많은 일본 사람을 믿고 있으니까 절대로 무라야마 담화를 후퇴시키지 않도록 감시하기 바란다"하고 격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 고문은 제가 1월 10일자 동아일보에 썼던 칼럼 '일본의 우경화를 돕는 일'도 비판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아베 정권이 다시 등장했던 요인으로 한국 대통령의 다케시마(독도) 방문, 중국에서 일어난 과격한 반일 폭동 등을 꼽고, 이것이 오른쪽을 보고 서 있던 아베씨의 등에 연달아 순풍을 보냈다고 썼습니다. 김 고문은 이를 궤변이라고 하고 "그러면 일본 국민은 결국 주변국의 바람에 좌지우지되는 피동적이고 주변머리 없는 사람들이란 말인가"라고 하셨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아베 정권을 선택한 것은 일본 자신의 판단과 책임입니다. 저는 다만 영토 문제 등 동아시아에서 잇달아 불었던 바람이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자극하고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지금은 일본이 주변을 자극하고 있는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식으로 내셔널리즘의 악순환이 일어나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김 고문은 일본 지식인들이 "서로 자제하고 조심하자"고 하는 것은 "가해자가 할 소리가 아니다"고 잘라 버렸습니다. 과거의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차이를 잘 알지만 그러한 이분법만으로 생각하면 앞으로 양국 관계를 열기 어렵지 않을까요. 일본에서 오른쪽 바람과 싸우던 사람들이 주변의 돌풍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언론계 선배의 분노를 가슴에 새기면서 용기를 내 한 말씀 드렸습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