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일 MBC ‘뮤직 쇼! 챔피언’에서 조용필의 신곡 ‘바운스(Bounce)’가 1위를 차지했다. 5월 3일에는 KBS ‘뮤직뱅크’에서도 로이킴의 ‘봄봄봄’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MBC에서는 1990년 ‘추억 속의 재회’로, KBS에서는 1989년 ‘Q’로 1위를 차지한 지 각각 23년, 24년 만의 일이다.
방송뿐만 아니다. 조용필의 신작 앨범 ‘헬로(Hello)’에 수록된 거의 모든 곡이 마치 줄을 서듯 음원 차트 상위권을 도배하다시피 했고, 음반은 10만장 이상 팔리며 공장을 밤새 돌려도 물량을 소화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시간이 조용필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로 되돌아간 듯하다. 싸이의 신곡 ‘젠틀맨’의 폭발적인 해외 반응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국내에서는 조용필이 싸이를 완벽하게 누르는 형국이다. 어쩌면 조용필의 음악인생에서 ‘현상’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적용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80년대는 ‘현상’이랄 것도 없이, 완벽한 그의 시대였으니까.
이 현상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조용필의 19번째 앨범인 ‘헬로’가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그의 음악적 시제를 젊은층까지 포괄할 수 있는 동시대로 치환했다는 데 있다. 이번 앨범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모던록, 기타팝, 일렉트로니카 등 지금 이 시대의 문법으로 만들어진 곡들이 있다. 앨범에 담긴 유일한 자작곡 ‘어느 날 귀로에서’를 비롯한 어덜트 컨템포러리(adult contemporary) 성향의 음악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절대적 지분은 전자의 몫이다. 선공개된 ‘바운스’, 뒤를 잇는 ‘헬로’는 동시대 리듬을 전면에 내세워 비로소 조용필의 음악세계에 그루브를 첨가한다. 파워팝의 리듬과 리프(2~4마디의 프레이즈를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에 송가적 후렴구를 배치한 ‘충전이 필요해’, 댄서블한 록넘버 ‘서툰 바람’ 역시 ‘인디’로 분류되는 한국 밴드들의 음악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시도들이다.
앨범에서 가장 모던한 멜로디와 사운드를 들려주는 ‘널 만나며’는 이 동시대성의 정점이다. 박용찬·박병찬 같은 ?은 뮤지션들과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지만 그는 앞서 말한 트랙들에서 기꺼이 새로움에 융화되고 있다. 스탠더드팝 ‘걷고 싶다’, 극적 구성이 인상적인 어덜트 컨템포러리 ‘어느 날 귀로에서’가 이 앨범에서 조용필의 씨줄을 담당한다면, 다른 노래들은 데뷔 45년을 맞는 가왕(歌王)에게 아침의 거미가 뿌려대는 듯한 풍부한 날줄로서 기능한다.
‘Hello’는 세상에 알려지는 방식부터 기존과는 달랐다. 대규모 공연을 개최할 때마다 기자회견을 하던 관례를 벗어던지고, 포털사이트에 스페셜 페이지를 개설했다. 앨범의 티저 영상과 신곡 ‘바운스’를 공개했다. 아이돌이나 쓰는 컴백 방식이지만 조용필의 이런 새로운 시도는 검색어 1위가 되어 돌아왔다. 4월 23일 올림픽홀에서 열린 쇼케이스는 동시대성의 정점이었다. 가왕의 인생 첫 쇼케이스, 누가 무대에 함께 서도 ‘불러만 주면 영광’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한 때 조용필에 의해 ‘후계자’로 지목받았던 신승훈이라든가, 게스트 없기로 유명한 조용필의 공연에 몇 번이나 출연했던 이은미 등, 그 누가 가왕의 호출에 응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자리에 섰던 이들 중 대중에게 널리 통용될 이름은 자우림, 박정현 정도였다. ‘나는 가수다2’로 갓 스타덤에 오른 ‘국카스텐’, 일렉트로니카 동네에서는 이미 스타이지만 대중적 지명도는 아직 미약한 ‘이디오테이프’, 그리고 신인 보컬그룹 ‘팬텀’이 무대에 올랐다. 언론이 온통 K팝의 가능성을 찬미하는 시대에 아이돌은 한 팀도 없었다. 자신의 피는 보컬리스트와 록, 그리고 첨단의 음악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 없이 선언함으로써, 동시대와 호흡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처럼 보였다.
이 모든 것들이 18집 ‘오버 더 레인보우’를 발표했던 10년 전과는 다르다. 아니, 1990년대와도 다르다. 댄스음악이 천하를 재패했던 1990년대와 함께, 그의 음악적 성향은 어덜트 컨템포러리로 선회했다. 1990년 발표된 12번째 앨범의 대표곡은 ‘추억속의 재회’와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다. 그 이전의 조용필 발라드처럼 하이라이트에서 감정을 분출하는 방식이 아닌,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듯 낮은 층위의 기승전결을 쌓아가면서도 연륜이 느껴지는 절제와 감성을 확립한 곡들이다.
이는 당시 발라드계의 새로운 대세였던 변진섭, 신승훈, 이승환 등의 젊은 가수들의 음악과는 달랐다. 인생의 깊이를 아는 세대만이 부르고 소화할 수 있는 노래였다. 한국의 성인가요 하면 트로트만 생각하던 시대에 조용필은 자신의 세대까지 포괄할 수 있는 발라드를 제시했고, 또한 멋지게 성공했다. 이 흐름은 ‘꿈’ ‘고독한 러너’까지 이어지며 ‘서태지와 아이들’이 새로운 패자로 등극한 댄스음악 천하에 적응하지 못했던 기성층의 맹주로 여전히 조용필이 자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었다. ‘신세대’가 화두로 떠올랐던 당시 사회에서 기성세대는 문화적 중심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문화소비층인 1970년대 중후반생들은 비록 조용필의 음악을 듣고 자라났지만 더 이상 조용필을 소비하려 하지 않았다. 댄스음악과 얼터너티브록 등 1990년대의 신문화에 열광했던 그들에게, 1980년대란 너무 빨리 옛날이 됐다. ‘지나치게 소비되지 않았던’ 이문세나 들국화 등의 라디오 스타들만이 1970년대 중후반생들에게 살아남은 1980년대였다.
반면 조용필 신화의 기틀이 됐던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생들의 조로(早老)는 너무 빨리 찾아왔다. 댄스그룹들이 TV를 장악하다시피하면서, 그들이 즐길 만한 음악은 음악 프로그램에서 공룡처럼 전멸하다시피했다. 그러잖아도 기성세대가 소비할 수 있는 문화가 그리 많지 않은 한국의 현실이었지만 하루아침에 찾아온 중국의 문화혁명처럼 그들은 그 이전의 어느 세대보다 빠르게 대중문화의 소비층에서 밀려났다. 말하자면 그들을 위한 공급과 소비가 동시에 사라졌다는 얘기다.
정리하자. 1980년대의 조용필은 기성세대부터 새로운 세대까지, 즉 베이비붐 세대와 (미래의) 신세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음악을 했지만 1990년대부터 전자를 택함으로써 동시대로부터 조금씩 밀려났다. 1990년대 중후반에 발표한 앨범들이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크게 관심을 못 받았다는 사실이 하나의 작은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1990년대와 함께 그가 한국보다는 일본으로, 방송보다는 공연장으로 활동무대를 옮겼기 때문에 대중의 눈에 띄지 못했다는 점을 참작할 필요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버 더 레인보우’는 가왕이 느꼈을 법한 딜레마를 말해줬던 앨범이다. 이 앨범에서 그는 ‘가요’라는 틀을 넘어 오페라와 프로그레시브록을 시도하며 자신의 음악적 야심을 실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조용필이 조용필일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 즉 대중성과 음악성의 균형이 사라졌기에 욕망은 과잉이 되어 넘쳐흘렀다. 아티스트적 성향이 가득한 앨범일수록 아티스트 스스로 창조의 과정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건만, 이 앨범에서 조용필은 그 욕심을 타인의 곡에 의지해 해결하고자 했다. 따라서 손발이 맞지 않는 게 당연했다. 시도에서는 많은 미덕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헬로’ 신드롬의 또 하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껏 서술했던 지난날의 시행착오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헬로’는 마케팅과 음악 양쪽에서 지금의 세대를 포용하는 앨범이다. 그렇다고 아이돌 댄스뮤직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TV보다는 공연장에서 더욱 큰 시장을 갖고 있는 모던록과 일렉트로닉 장르를 시도하지만 해외 1급 스태프들을 작곡, 믹싱, 마스터링에 동원함으로써 국내 사운드의 아쉬움을 일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