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단계적 축소설에 휩싸였던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당분간 유지될 거라는 전망 쪽으로 기울고 있다. 22일(현지 시각)로 예정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의회 발언에서도 원론적인 입장 표명이 있을 거란 예상이 많다. 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오전 10시(현지시각)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에 출석해 출구 전략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FRB가 월 850억달러 규모의 양적완화(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자금을 푸는 것)를 차츰 줄일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물가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비둘기파 성향의 버냉키 의장이 원론적인 견해를 밝히는 데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달러 오르고 채권 내리고

21일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장중 1.99%까지 오르며(가격 하락) 2% 진입을 시도했다. 만일 FRB가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면 채권을 살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FRB 이사들이 양적완화를 지지하는 발언을 내놓으며 국채 금리는 다소 진정됐지만 2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 있다. 달러화 가치도 양적완화 종료 우려에 강세를 띠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버냉키 의장은 출구전략에 대해 신중론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조지 곤살베스 노무라 채권 전략가는 CNBC에 “매파의 시대는 지나갔다”며 “버냉키 의장이 이전의 비둘기파 발언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채권시장도 그렇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체 프래프케 코메르츠은행 외환 전략가도 “최근 양적완화 종료 전망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띠었지만 버냉키는 급격한 달러 절상을 막기 위해 제동을 걸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으로 통화정책 방향의 열쇠가 될 고용 시장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일부 시뮬레이션에선 실업률이 7.2~7.3%로 낮아지면 양적완화 규모를 줄여도 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과거 버냉키 의장이 인용한 적이 있는 통계에선 고용의 질과 지속성을 따져봤을 때 지난 9개월간 고용시장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 9월부터 출구전략 전망도

버냉키 의장이 이번에 보수적인 발언을 내놓더라도 앞으로 FRB가 출구 쪽으로 걸음을 옮겨가야 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FRB 이사들은 미국 경제가 호전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3차 양적완화 정책을 처음 발표했던 작년 9월, 올해 말 실업률이 7.75%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4월 실업률은 이미 7.5%로 내려왔다.

합동경제위원회에선 양적완화의 속도 조절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버냉키 의장은 매달 FOMC 직후 “자산매입 속도를 바꾸지 않겠다”고 밝혀 왔지만 일부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은 개별적으로 양적완화 축소 주장을 펴기도 했다.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21일 “소비자 물가가 물가안정 목표치를 밑돌고 미국 경제 회복세가 느리기 때문에 FRB는 성장을 촉진하고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양적완화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며 “그래야 일본이 겪었던 물가 침체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FT는 “만약 FRB가 양적완화 규모를 천천히 줄이길 원한다면 아마도 오는 9월부터 시작될 수 있다”며 “반대로 급격한 출구전략을 취한다면 3개월 만에 양적완화를 종료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뉴욕 연은 총재 “나도 확실치 않아”

출구 전략을 둘러싸고 FRB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은 총재는 21일 재팬소사이어티 모임에 참석해 “경제 전망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통화정책이 어디로 갈지 나도 확실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그는 “예상보다 낮은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채권매입 규모를 유지해야겠지만 노동시장에서 두드러진 개선이 관측된다면 채권매입 속도를 늦출 수도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수개월간 물가와 노동시장을 보고 통화정책을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입장을 유보한 더들리 총재와 달리 다른 지역 연은 총재들은 계속해서 각자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은 총재는 21일 “올 여름까진 양적완화 속도가 지금처럼 유지되겠지만 고용시장이 개선되면 가을에는 종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와 리처드 피셔 연은 총재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나라야나 코처라코타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는 “긴축에 따른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엇갈린 FRB 이사들의 발언이 금융시장에 혼선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