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改良)이란 '나쁜 점을 보완하여 더 좋게 고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품종 개량이라 하면 더 맛있는 품종의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한 일로 여긴다.
그러나 이는 소비자만의 희망 사항이지 실제로는 더 맛없는 품종으로 만들어놓고 이를 '개량'이라 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품종 개악이 아니라 품종 개량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농산물 생산자와 유통업자 입장에서는 개량이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으며 오래 보관할 수 있어 더 많은 이익을 줄 수 있는 품종으로의 개량 말이다.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다가 풋고추 포장 비닐까지 씹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뱉어본 적은 없는가. 하룻밤, 아니 무려 이틀간을 소금물에 절였음에도 그놈의 배추가 "나 밭으로 돌아갈래" 하며 뻣뻣하게 숨죽지 않는 일을 겪어보지는 않았는가. 체면 차려야 하는 식사 자리에서 방울토마토의 질긴 껍질이 이 사이에 끼여 식은땀 흘리며 혀를 이리저리 놀려본 적은 또 없는가. 보통은 농사를 잘못 지어 그런가 하는데, 아니다, 다 품종 탓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농민이 '그 옛날의 선량한 생산자'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도 소비자만의 희망 사항이다. 농민은 더 많은 돈을 벌어주는 품종, 즉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으며 오래 보관 가능한 품종을 심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농산물이란 게 묘하여 이런 품종은 맛이 없다. 자연은 공평하여 하나를 주면 다른 하나를 뺏게 되어 있다. 농민이 이 맛없는 품종을 심고도 잘 팔리지 않을까 걱정하지는 않는다. 소비자가 품종 따지며 사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복불복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생산자와 유통업자 입장에서의 품종 개량임이 분명한데 부자 소비자에게는 개악, 가난한 소비자에게는 개량이 된 과일이 있다. 참외이다. 요즘 우리가 먹는 참외 품종은 대부분 '오복'이다. 드물게 이 품종명은 소비자가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대형마트에서 이 참외 이름을 '자랑스럽게' 걸어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맛을 보고 자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종자회사 등에서 내놓은 오복 참외에 대한 설명을 보면,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아삭한 식감과 풍부한 과즙, 평균 15브릭스 이상의 당도가 그 특징"이라 쓰여 있어 그 말을 믿고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아삭한 식감'에 함정이 있다. 아삭한 것이 아니라 단단하다. 아니다, 질기고 딱딱하다. 껍질 부위를 왕창 깎아내어도 턱이 아프도록 씹어야 한다.
오복이 질기고 딱딱하게 '개량'된 까닭은 오직 생산자와 유통업자의 편익을 위한 것이다. 선별기에 돌려도 흠집 하나 나지 않고 운송 중 마구 다루어도 물러지지 않으며 마트의 판매대에서 오래오래 팔 수 있다. 그들의 편익을 위해 소비자는 오복을 먹으며 오복 중의 하나라는 치아를 혹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오복 중에 부드럽게 아삭한 참외가 있다. 작은 참외이다. 한 손에 쏙 드는 아주 작은 참외. 고급 과일 파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는 이렇게 작은 참외가 없다. 두 손으로 들어도 꽉 차는 큼직한 참외만 놓여 있다. 그걸 최상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가격만 최상품이지 맛은 최하등품일 수 있다.
한 손에 쏙 드는 작은 참외는 재래시장이나 트럭에서 팔린다. 등외품이기 때문이다. 싸나 맛은 이게 더 있다. 당도가 걱정이라고? 참외는 일정한 숙기에 이르면 작으나 크나 당도가 거의 같다. 노란 색깔이 짙고 흰 줄이 선명하면 맛이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