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문가들은 최근 일본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화 약세의 최대 피해국으로 한국을 꼽았다. 특히 우리 산업계 중에서도 특히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중화학 공업 부문’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한국의 대응책에 있어서는 전문가들 다수는 양적 완화 정책 같은 맞불 작전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조선비즈가 최근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양상으로 등장한 ‘통화 전쟁 2.0’의 의미를 진단하기 위해 지난 7~13일 국내 금융 일선 전문가 20인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들은 이같이 답했다.

<그래픽 김수진 기자 joynhappy@chosun.com>

◆ 엔저 최대 피해국 한국-중국 순

응답자들 다수는 엔화 약세로 인한 최대 피해국을 묻는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63%가 한국을 꼽았다.(복수응답 가능) 다음으로 응답자의 13%는 중국을 엔화 약세 피해국으로 지목했고, 17%는 ‘중국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신흥국’을 꼽았다. ‘피해가 많은 국가는 없다’는 대답도 1명 있었다.

한국이 최대 피해국이라는 국내 답변은 해외 분석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무디스는 지난 15일 보고서에서 “엔화 가치 절하로 한국 수출 기업들에 대한 신용 평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경제 구조가 수출 중심인 데다가 특히 일본과 경쟁 관계에 있는 제품들이 많다. 엔화 약세는 곧바로 한국 제품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앞서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한국이 엔화 약세의 최대 피해국”이라고 분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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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금융 전문가 72% “韓 자동차 업종 피해 가장 커” 우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엔화 약세로 인한 우리 산업계의 피해 중에서도 특히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중화학 공업 부문’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응답자 중 중화학 공업을 꼽은 사람의 비율은 72%에 달했다.(복수응답 가능) 한국은 자동차, 전기·전자 업종에서 일본 제품과 비슷한 가격대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 1분기 일본 엔화 대비 한국 원화 환율은 14.4% 상승했다. 2009년 2분기 이후 분기별 상승폭이 가장 크다. 금융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2분기 한국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동차 산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12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독일 도이치은행은 엔화 약세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입을 피해가 전기·전자 업종보다 클 것으로 우려했었다. 실제로 올 들어 자동차 관련주 주가는 큰 폭으로 내렸다. 현대자동차는 11.7%, 기아자동차는 3.2%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1.3% 내렸다.

이 밖에도 전문가들은 전자·전기 등 IT 업종도 엔화 약세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으로 꼽았다. 15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보고서에서 “원화 강세 탓에 달러화로 제품을 파는 한국의 자동차, 화학, 건설 기업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했다. 또 한국의 철강과 전자 산업도 엔화 약세 피해 업종으로 지목했다. “자국에서 대규모로 물건을 수출하는 일본 제품과 경쟁하고 있어서”라는 분석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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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불 작전은 별로”…“한국 금리 높은 편, 양적 완화 부적절”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본은행의 강력한 통화 완화책이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 완화(QE3) 같은 정책을 동원해야 하는 걸까. 설문에 답한 국내 전문가들 다수는 한국 정부가 맞불 작전을 놓을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선진국의 양적 완화에 한국도 같은 방법으로 대응해야 하는지를 묻자, ‘의도적인 원화 약세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이 20명 중 8명(40%)이었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응답을 한 비율도 20%(4명)였다. 임지원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양적완화를 사용하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응답자들은 다른 나라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조익연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대응이 불가피하지만 궁극적인 해결 방법은 국제 공조를 통해 환율 전쟁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직접적인 환율 개입은 자제하되, 일반적인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신흥국 자국 통화 강세에 부채 부담 늘어

한국 말고도 다른 신흥국들로서는 자국 통화 가치가 오르는 상황이 버겁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의 35%(7명)도 신흥국에 대한 위협이 ‘위험하다.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15일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15개 신흥국 기업들은 총 1300억달러 규모의 달러화, 유로화 회사채를 발행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국채까지 포함해 올해 이들의 채권 발행 규모는 6000억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4300억달러)보다 40% 가까이 늘었다. 자국 통화 가치 강세가 지속되면 갚아야할 달러화 부채가 늘어난다.

‘같은 신흥국이라도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는 의견도 많았다. 전체 응답자 중 45%(9명)였다. 모든 나라가 수출 경합적 구조를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허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장은 “중국과 기타 신흥국으로선 일본의 수출 증대가 긍정적일 수 있다”며 “이들 산업 구조가 일본과 경쟁 관계라기보다는 수직적 결합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일본 기업들의 생산 기지가 있는 탓에 오히려 엔화 약세의 수혜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