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집에 먹을 건 풍족한가? 이 공부는 밥벌이가 되지 않네."
1928년 경성제국대학 철학과. 미학(美學)과 미술사를 전공하겠다고 나선 조선인 청년에게 일본인 교수가 걱정스레 물었다. 청년은 "그래도 꼭 하고 싶다"고 응수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학자이자 미학자인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1905 ~1944)의 청년 시절 얘기다.
◇최초의 미술사학자 고유섭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무관심성', '단아함' 등 우리 전통 미술을 설명하는 용어가 모두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우리 예술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미로 해석한 '식민사관'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의 개념은 아직도 전통 미술의 주요 키워드로 남아있다.
고유섭이 없었다면, 박물관도 없었다. 고유섭 이전 우리나라에는 서화(書畵), 탑파(塔婆)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문인들이 취미삼아 감상을 남기는 정도였다. 서구식 근대교육을 받은 고유섭은 달랐다. 대학 졸업 후 경성대 미학연구실 조수로 근무했던 그는 전국 각지의 석탑을 실측(實測)하고, 사진으로 남겨 정리했다. 그는 백제, 신라, 통일신라 때의 탑을 양식론에 입각해 분석한 최초의 학자였다. 1933년 개성부립박물관장에 부임하면서 연구 폭은 회화·조각·공예·건축까지 넓어졌다. 39세 때인 1944년 간경화로 아깝게 세상을 떴다.
◇'고유섭 전집' 10년 만의 완간
고유섭의 지적 생산물을 아우르는 '우현 고유섭 전집' 전 10권이 열화당에서 완간된다. 지금까지 출간된 고유섭의 저작, 미발표 유고(遺稿), 스케치, 도면 등 고유섭이 남긴 모든 자료를 아울렀다. 2003년 출간 기획에 들어갔으니 만 10년이 걸린 장기 (長期) 프로젝트다. 이번에 나올 책은 '미학과 미술평론', '수상(隨想), 기행(紀行), 일기, 시(詩)', '조선금석학 초고' 등 모두 세 권. 열화당은 2007년부터 '조선미술사' '송도의 고적' '고려청자', '조선건축미술사 초고' 등을 펴내왔다.
◇한 출판인의 호기심이 빚어낸 역작
모든 건, 이기웅(73) 열화당 대표의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원고 청탁을 위해 최순우·황수영·진홍섭 등과 자주 만났다. "그분들을 뵈러 가면 하나같이 '우현' 얘기를 했다. 그들을 관통하는 '우현'의 실체를 언젠가는 꼭 파악하리라 결심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글을 찾아 모으는 것도 어려웠지만, 달필에 벽자(僻字·흔히 쓰지 않는 글자)가 많은 글을 풀이하는 것도 간단치 않았다. 책을 엮는 동안 자문위원인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진홍섭, 황수영 등이 차례로 세상을 떴다. "울타리가 와지끈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어느 미술사학자는 "이미 끝나버린 구닥다리 미술사학자를 왜 붙들고 있냐"는 말도 했다. 이 대표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춥고 배고팠던 시기를 버텨낸 고유섭의 정신을 배부른 시대의 우리들은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버텼다"고 했다.
그 대장정은 열 권, 전체 3686쪽, 도판 789점의 방대한 책으로 남았다. 11~12일 강릉 선교장에서 '우현 고유섭 전집' 완간 기념행사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