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벌의 옷에 어떤 이들은 인생을 건다. 단추 하나, 바느질 한 땀에도 때론 눈물과 추억이 녹아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의 옷에 담긴 가슴 찡한 삶 얘기를 ‘이 옷, 내 인생’ 시리즈로 소개한다.

디자이너 진태옥(79)에게 새하얀 셔츠는 "지금도 나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첫 기억은 16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가족과 함께 함남 원산에서 제주도까지 피란을 내려갔다. 움막에서 숨어 지냈다. 어느 날인가 건너편 집 비뚤비뚤한 창살에 누군가 무심코 걸어놓은 새하얀 와이셔츠를 보게 됐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셔츠에 스며들어 옷이 투명하리만큼 빛났다.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잠시나마 전쟁의 고단함도, 심지어 내가 누군지도 잊었죠. 그 바삭한 하얀 천과 빛이 만나 흩어지는 풍경에 나도 모르게 두 손 모으고 눈을 감았던 것도 같네요."

평소처럼 새하얀 셔츠를 입고 자신의 작품 옆에 맨발로 앉은 진태옥.“언젠가 열게 될 마지막 패션쇼에선 딱 한 벌만 세우고 싶다.‘이게 평생 내가 만들고 싶었던 단 한 벌’이라고 웃으면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디자이너 진태옥의 세포 속에 '화이트 셔츠'가 새겨진 건. 첫 가게를 냈을 때도, 1965년 '프랑소와즈'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패션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도, 그녀가 처음으로 지어내는 옷은 언제나 빳빳하고 눈부신 셔츠 한 장이었다.

새하얀 셔츠, 진태옥의 세포

사실 패션디자이너가 될 줄은 몰랐다. 이북에서 나고 자란 진태옥의 어머니는 강건한 여성이었다. 그는 소녀 진태옥을 무릎에 앉히고 "여자라고 남자보다 못할 게 하나도 없다"고 가르쳤다. 어릴 땐 법관(法官)을 꿈꿨다. 전쟁통에 서울대 법대 시험을 쳤다 떨어지고 한동안 마음 앓이를 했다. 서울대 총장실에서 3년간 비서로 일했고, 25세에 결혼했다. 시집살이는 매서웠다. 남몰래 탈출을 꿈꿨다. 첫아이를 낳고 1963년 국제복장학원에 등록했다. '이종천패션연구소'에서도 1년을 수업했다. 1965년 이화여대 옆 골목에 작은 가게를 냈다. 그때 처음 쇼윈도에 내건 옷이 흰 셔츠였다. "16세에 보고 눈을 감았던 그 셔츠. 소재는 바삭하고 입으면 몸에 착 감기는…. 그런 옷 한 벌을 만들고 싶어서 밤새 재봉틀을 돌리곤 했다."

(사진 왼쪽)얇은 비단(노방)을 겹겹이 겹쳐 만든 드레스. (사진 오른쪽)전통 활옷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붉은 자수 드레스. 청바지를 만드는 데 쓰는 데님(denim) 원단 위에 포개 이채로운 멋을 더했다.

옷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알록달록하고 장식 많은 부인복이 여성복의 전부였던 1960년대 중반. 중성적 매혹으로 무장한 진태옥의 세련된 무채색 컬렉션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프랑소와즈'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세웠다. 남성복·아동복 라인도 열었다. 모두 탄탄대로였다. 숱한 연예인들이 앞다퉈 그의 옷을 입었다.

1993년엔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 무대에 섰다. 한국의 활옷과 전통 기와에서 영감을 받은 자수 드레스와 셔츠를 올렸다. 1994년엔 미국 뉴욕 버그도프굿맨 백화점에 입점했다. 가죽끈이 허리에 달린 흰 셔츠 한 장이 700~800달러에 팔려나갔다. 진태옥은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제일 잘난 줄 알고 살았다. 내리막길이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다"고 말했다.

본질만 남기고, 다 걷어내다

1997년 IMF 외환 위기는 진태옥에게도 찾아왔다. 남성복과 아동복 라인을 정리했다. 스케치를 한 줄도 할 수 없는 날이 늘어났다. 골방에서 무릎 꿇고 기도만 하며 하루를 보냈다. 진태옥은 "지독한 막막함의 끝에서 비로소 옷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의미 없는 주름, 이유 없는 선(線)은 모조리 뜯어내고 걷어냈다. "옷의 뼈대를 완성한다는 게 어떤 건지 새삼 알았다. 장식은 들어갈 자리도 없었다."

수행(修行)에 가까운 옷 만들기. 그렇게 다시 태어난 진태옥의 화이트 셔츠는 단단한 조약돌을 닮았다. 소매는 풍성하고, 주름은 힘차다. 진태옥은 "허리 주름을 촘촘하게 여밀수록 밑단은 반대로 꽃잎처럼 활짝 펼쳐지기 마련이다. 하나를 줄이면 다른 하나가 부풀어 오르는 것. 그게 결국 옷이고, 또 삶인 것 같다"고 말하며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니까 말이죠. 이 셔츠는 결국 나예요. 죽는 날까지 내가 짓고 또 지어야 하는 건, 눈물보다 투명한 화이트 셔츠이고, 또 나 자신인 거예요."

☞진태옥

1934년 함남 원산 출생. 1999년 영국 파이돈출판사가 선정한 ‘20세기 패션디자이너’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한국인이다. 1993~ 1997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무대에 섰다. “영원한 현역으로 남아 죽는 날까지 쇼를 여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