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통조림을 모으던 친구가 있었다. 큰일이 터질 것 같다며 통조림을 모은다는 말에 처음엔 너무 유난스럽다는 생각을 좀 했다. 하지만 한 달간 쌓아올린 나지막한 통조림 탑을 목격하고 나서는 문득 나도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내 방에도 통조림 탑이 쌓이기 시작할 무렵, 친구는 모으기를 그만두고 한 달간 통조림만 먹었다. 어느 날 밤 나도 햄 통조림 6개를 한 번에 먹어 치웠다.

밤 열한시쯤 대형마트로 간다. '1+1'이라는 딱지를 보물찾기하듯 찾아다니다가,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크리스피 치킨 할인율이 30%에서 50%로 바뀌었는지 확인한다. 벚꽃 아래에 앉아 뻣뻣한 다리와 차가운 날개를 먹어치운다.

삼각김밥, 햄버거, 샌드위치, 과자, 초콜릿, 커피. 내 몸에 무례한 짓을 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지금 뭘 먹고 있는 걸까. 배는 차오르는데 영혼은 꺼져만 간다. 기면증에 걸린 듯 시도 때도 없이 졸리고 기운이 없다. 집에서 보내온 영양제를 으적으적 씹어보지만 쓴맛, 신맛에 표정이 우습게 변한다.

즐거움을 맛보는 미각을 잃을까 봐 두렵다. 쌓여가는 통조림 같은 불안함과, 떨어져 가는 가격처럼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것들을 먹고 있으려니까 '맛있다'는 느낌이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오늘 저녁,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밥을 먹으면서 물어봐야겠다. '맛있냐?' 나도 다시 행복의 맛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