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근 前 언론인

필자는 경기도 파주에 산다. 접경 지역인 이곳은 강원도 북부 못지않게 북한의 각종 위협에 민감하다. 최근 몇달 파주 주민들은 최악의 북핵 위협을 온몸으로 겪었다. 파주 시민들이 이번 위기를 어떻게 보고 대응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파주 시민들의 반응은 '담담함'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응이 꽤 강단 있어 마음속으로 응원과 기대를 보낸다. 그러나 파주의 위상을 생각하면 개성공단 등 경제 협력은 계속 이어지도록 새 정부가 감정적 대응은 자제하고 차분하게 대책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서울에서 파주 신도시로 이사 왔다는 한 어르신의 말씀이다. 여러 파주 시민과 대화할 때도 비슷한 의견을 많이 들었다.

남남 갈등의 두 축을 이루는 종북 좌파나 다소 급진적인 우파와 달리, 분단과 북한 위협의 현실을 안고 사는 파주 시민들의 삶 속에 남북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는 단순하게 말하자면 정권적 대응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햇볕이건 봉쇄건 더 큰 남북 공존공영의 비전보다는 정권의 정치적 필요성이 더 크게 작용하는 대응을 보여왔다.

이명박 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9년 9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 폐기를 선언하면 그에 상응하는 통 큰 지원에 나서겠다고 했는데, 북한으로부터 외면당했다. 주변 4개국 반응도 차가웠다. 기존 6자회담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중국은 반대했고 일본러시아는 자기들의 역할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하거나 불편해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으로부터 시작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좌파 정부의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 등 지난 40년 동안 우리는 북한을 상대로 안 해본 회담, 안 해본 협의가 없을 만큼 다양한 접촉을 해왔다. 동시에 그만큼 다양한 형태로 기만과 협박을 당해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남남 갈등이 생길 만큼 사안마다 국론이 분열된 반면 북한은 핵 문제와 핵 외교에 관한 전문가 집단이 형성돼 집요하고 일관된 원칙에 따라 압박과 위협 수위를 지금도 높여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정책으로 '신뢰 프로세스'를 제시했다. 아직 제대로 작동할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미래 창조도, 국민 행복도 없다. 지금 우리 국민은 차분하게 인내심을 갖고 남북 간에 신뢰가 자리 잡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것은 접경 도시 파주 시민들의 기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