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배동의 탈북 학생 대안학교인 '두리하나국제학교'는 지난 18일 2배 넓은 맞은편 건물 5층으로 이사했다. 12명이던 학생이 25명으로 늘어나 공간이 비좁았다.
학생이 늘어난 것은 탈북자 교사 김다해(가명·여·35)씨 때문이다. 그는 학생들과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찾아오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부모가 먼저 탈북해 혼자 북한과 중국에 남았다가 나중에 한국에 온 학생이 많았다. 다들 마음속 상처가 깊었고, 먹고살기 바쁜 부모들이 잘 돌보지 못해 외로워했다. 김씨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기숙사 지하에 아이들 식사를 준비했다. 아이들 옷이 낡아 해지면 월급 100만원을 쪼개 학교 맞은편 헌옷 가게에서 1만~2만원짜리 옷을 사 입혔다.
학생들 간에 욕설과 주먹다짐이 끊이지 않던 학교는 김씨가 가르치면서 싹 바뀌었다. 엄마를 원망했던 아이들은 작문 시간에 "엄마를 오해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파. 엄마 사랑해"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김씨를 '두 번째 엄마'로 불렀다. 탈북자 사회에 소문이 나면서 학생도 한둘씩 늘어났다.
"아이들을 보니 제 딸아이 생각이 더 간절했어요. 전 아이들의 미소를 보며 견디고, 아이들은 제 보살핌을 받고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씨는 김정숙교원대학을 졸업하고 함북 회령에서 유치원 학생들을 가르치다 2006년 탈북해 중국에 들어갔다. 그 후엔 줄곧 가시밭길이었다. 중국 선양(瀋陽)에서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를 당했고, 중국인의 도움으로 겨우 도망을 쳐 그와 결혼했으나 남편의 주벽(酒癖)을 이기지 못하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서울에서 음식점 일을 거들고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팔며 억척스럽게 일했다. 그러나 중국에 두고 온 돌도 안 된 딸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보면 그리움이 덜할까 해서 작년 2월 두리하나국제학교에 들어갔다.
김씨는 작년 5월 학교 대표인 천기원(57) 목사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딸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기숙사 방 10개 중 가장 작은 방에서 일곱 살 난 딸과 희망을 키워가는 김씨는 "북에 남겨둔 가족이 그리워질 때면 여기서 만난 새로운 가족과 부둥켜안고 위로할 겁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