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 논설위원

환경부가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8월까지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Business As Usual)를 재(再)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가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긴 했어도 막상 정부가 그러겠다고 나서니까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건지 하는 생각이 든다. ‘BAU’는 ‘지금 추세대로 갈 경우의 전망치’를 말한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코펜하겐 세계기후회의를 앞두고 국제사회에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BAU 대비 30% 줄이겠다”고 공표했다. 그때 정부가 내놓은 2020년 BAU 값은 이산화탄소(CO₂) 기준 8억1300만t이었다. 여기서 30%를 줄이는 것이므로 2020년 배출량을 5억6900만t 아래로 묶겠다는 뜻이라고 해설까지 했다. ‘녹색 성장’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던 이명박 정부는 굉장히 선도적 약속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실천이 따르지 않았다. 두 달 전 환경부가 2010년 배출량을 집계했더니 2009년보다 9.8%나 늘어나 있었다. 이미 2020년 목표치를 1억t 가까이 초과한 것이다. 2011·2012년 수치는 한참 뒤에나 나오겠지만 증가 추세에 무슨 변화가 왔을 것 같지는 않다. 새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이 배출 전망치, 즉 BAU 자체를 다시 계산해보겠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배출량이 왕창 늘어난 것을 출발점 삼아 재산정하면 BAU는 2009년 값을 상당히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BAU 대비 30% 적게’라는 2020년 목표치도 올라가게 된다. 한마디로 골대를 키워서 골을 넣겠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책임 부서인 환경부의 사정도 이해는 된다. 산업통상부는 최근 2027년까지 석탄발전소 12기를 더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전력 위기를 여러 번 겪은 다음이라 좀 무리하다 싶은 계획을 갖고 나왔다. 석탄발전소는 ‘CO₂ 공장’이다. 이렇게 되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더 희박해진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BAU를 재산정해 ‘이제 계산이 바뀌었다!’고 나설 경우 우리 체면이 뭐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 녹색기후기금(GCF) 같은 국제기구도 유치하고 좀 설치는가 싶더니 역시 그 수준이군 하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국제회의에서 말발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BAU 대비 감축 목표’는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코펜하겐 회의 후 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멕시코·싱가포르·인도네시아·코스타리카·이스라엘·칠레 같은 나라들이 우리를 뒤따라 ‘BAU 대비’ 방식의 목표치를 내놨다. 이 나라들도 나중에 ‘우리도 BAU 계산이 달라졌으니 목표치를 늘리겠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국제 협상 교과서엔 ‘한국 방식’이란 용어가 ‘얕은 꾀’를 뜻하는 말로 통용되게 될지도 모른다. 달리 보면 ‘BAU 대비 목표치’가 합리적인 측면도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정부와 기업 힘으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외생(外生)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유가(油價) 흐름, 경제 사이클, 원전 사고 같은 것이 그런 요소이다. 정부가 고정된 배출량 수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내용을 약속하는 측면이 있다. 새 정부가 CO₂ 배출량 전망치를 다시 계산해보겠다는 것엔 지난 정부가 이월(移越)시킨 짐을 덜어내고 새로 출발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표치를 바꾸더라도 하는 데까지는 해본 다음이라야 다른 나라의 양해를 받아낼 수 있다. 정권 바뀌자마자 말을 달리하고 나오는 것은 국가 신의(信義) 문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