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재판장 시절 자기가 재판했던 사건과 원고·피고가 겹치고, 쟁점도 거의 같은 사건의 변호를 맡아 변호사법 위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변호사는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있던 2011년 A씨가 오피스텔 관리인 선임 문제로 분쟁을 빚던 B씨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 재판을 맡았다. A씨는 오피스텔 소유주 총회에서 B씨를 관리인으로 뽑지 않았는데도 B씨가 관리인 행세를 한다며 B씨에게 관리인 지위가 없다는 걸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당시 재판장이던 이 변호사는 A씨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각하 판결을 내렸다.

2012년 2월 판사를 그만두고 개업한 이 변호사는 지난 3월 이번엔 B씨가 A씨 등 7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B씨 변호를 맡았다. B씨는 A씨 등이 다른 사람을 관리인으로 선임해 자기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변호사가 맡은 사건은 과거 자기가 재판했던 사건과 당사자 일부가 같고, B씨에게 관리인 지위가 있느냐 없느냐를 다투는 것이어서 재판 쟁점도 거의 같다.

변호사법엔 판사나 검사가 재직 중 취급한 사건은 변호사가 됐을 때 수임하지 못하게 돼 있다. 대법원은 2003년 변호사법의 '취급한 사건'이란 판·검사 때 맡았던 그 사건뿐만 아니라, 사실관계나 실질적 쟁점이 같은 사건도 포함한다고 판결했다.

판·검사 출신이 재직 중 다뤘던 사건을 마음대로 수임할 수 있게 하면 재판이나 수사를 통해 알게 된 사건 관련 정보를 변호사가 된 뒤 자기가 변호를 맡은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또 판·검사가 나중에 변호사 개업을 염두에 두고 사건 당사자 가운데 어느 한쪽에 유리한 판결이나 수사를 할 위험도 있다. 사건 당사자 중 한쪽이 대기업이라면 그럴 위험은 훨씬 커진다.

국민은 판·검사 출신이 과거 자기가 취급했던 사건 변호를 맡는 걸 보면 그들이 판·검사 시절 과연 공정하게 재판이나 수사를 했을 것인지 의심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사법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가 추락할 것이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이번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와 비슷한 수임 사례들이 사법부 전체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똑바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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