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테러가 휩쓸고 지나간 미국 보스턴. 15일 오후 테러 현장에서 도보로 3분 거리의 백베이(Back bay)역을 나서는 순간 군용 장갑차 한 대가 눈앞으로 지나갔다.
폴리스라인이 쳐진 현장 주변엔 소총과 방탄모, 방탄조끼 등으로 중무장한 군인들이 서 있었다. 등에 FBI(연방수사국), DHS(국토안보부) 등 소속 기관 명칭이 새겨진 옷을 입은 정부 요원이 무리지어 거리를 돌아다녔다. 테러 현장 일대는 호텔이 밀집한 번화가였지만 이날 밤은 한적했다.
이번 마라톤에 참가했던 팀 기브(31)씨는 "보스턴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려 했지만, 호텔 방에 있으니 9·11 테러 때 목숨을 잃은 가족과 친구들이 자꾸만 떠오른다"며 "당장 가족이 있는 뉴저지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보스턴 사람들에게 이날은 축제 같은 날이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보스턴 마라톤이 열리자 보스턴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마라톤 참가자 2만3000명을 포함해 50만명이 마라톤 코스 근처에 몰려들었다고 한다. 15일은 '애국자의 날'(Patriots' Day)이었다.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의 첫 전투가 열린 날을 기념하는 날로, 매사추세츠주에선 휴일이다.
이날 오후 2시 49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환호와 웃음이 넘쳐흘렀다. 폭발은 오후 2시 50분 결승선이 있는 백베이 지역 보일스턴가(街)에서 13초 간격으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마라톤 선수들이 결승선을 통과한 지 약 2시간이 지나 일반인 참가자들이 들어오는 시점이었다. 완주를 눈앞에 둔 일반인 참가자와 그들을 축하하기 위해 나온 가족과 친구들이 대거 결승선 주위에 몰려 있었다.
첫 폭발은 결승선을 30여m 남긴 지점의 마라톤 코스 옆 인도에 모여 있던 관람객들 쪽에서 일어났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화염이 10여m 위로 치솟았고, 이내 연기가 퍼져 나갔다. 그 연기가 채 걷히기도 전에 첫 폭발 지점에서 160여m 떨어진 마라톤 코스 쪽에서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수백명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났다. 연기가 사라지면서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 인도에 흥건한 피, 인근 상점 쇼윈도의 유리 파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라톤 참가자 바스타지안(35)씨는 "수많은 사람이 다리를 잃고 쓰러져 있었고, 사방은 피로 가득 찼고 뼛조각과 피부 조각이 널려 있었다"고 말했다. 결승선 부근에 서 있던 해트필드(27)씨는 폭발음이 들리는 순간 몇 명이 거리 위로 날아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현장에서 200여m 떨어진 웨스틴호텔 투숙객 클라우디아 비톤테(48)씨는 "마라톤에 참가했던 남편이 완주하고 방으로 돌아와 샤워하러 들어갔을 때였다. '꽝' 하는 소리가 났고, 31층 객실에서도 흔들림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이 좀 더 늦게 뛰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멘델슨(44)씨는 폭발이 일어난 결승선 부근 3층 건물에서 일찍 경기를 마친 동생과 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는 "폭발음을 듣고 밖으로 나갔을 때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말했다. 경찰은 폭탄 2개가 모두 양철쓰레기통 안에 설치돼 있었다고 밝혔다.
사건 직후 수사 당국은 현장 주변에서 수상한 행보를 보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20세 대학생을 심문했지만 그는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이날 밤 9시 마지막 브리핑에서 경찰은 "현재 체포·구금된 용의자는 없다. 범인, 범행 동기 등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