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년 35세에 자서전을 내다니, 풋내 난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생각 거두시라.
축구선수 나이로 환원하면 70이 넘은 사람이다. 게다가 이동국, 자타공인 롤러코스터 인생을 살아온 주인공 아닌가. 롤러코스터보다 스릴 있고 흥미진진한 축구선수 이동국의 인생 이야기.
축구선수 이동국과의 인터뷰 자리는 꽤 힘들게 마련됐다. 책 출간을 이유로 만남을 요청했는데, 그가 너무 바빴다. 이유는 축구 때문이다. 전북 현대 소속인 그의 K리그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14 월드컵 예선경기까지 치러야 한다. 최강희호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그는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 보였고(실제로 어려웠다), 출판사 역시 원활한 홍보활동을 펼치지 못해서 속만 태우고 있는 상황.
그러던 어느 주말 오후, 시내 대형서점에서 책 관련 행사가 있으니 따로 인터뷰가 가능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봄기운 완연한 광화문에서 여유 있게 축구선수 이동국을 만날 수 있었다.
서른다섯 축구선수의 이야기
불운의 아이콘, 게으른 천재 등 각종 오명을 들으며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가 끝내 스스로 일어난 이동국의 축구 삶은 곡절이 많았다. 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단단한 사람이 되었고, 본인의 역경 극복을 글로 보여줄 정도로 우뚝 섰다.
"이야기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그래도 책 한 권으로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실제 이야기를 모두 넣으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랍니다."(웃음)
그가 내놓은 책은 라는 제목의 자전 에세이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덤덤히 풀었는데, 특별한 기교 없이 스토리만 따라가도 큰 울림이 있다.
"트위터를 보면, 제 책을 읽고 울었다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글쎄 어느 대목에서 울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웃음) 한 번에 다 읽었다는 말씀도 하시고, 진짜 큰 용기를 얻었다는 분들도 계신데,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를 들으니까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는 자신의 실패담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비록 자신은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다른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축구가 아닌 다른 무엇이든 한 사람이 직접 겪은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가 된다. 어떤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그는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풀어놨다.
"제목 잘 지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아내가 붙여줬어요. 어느 날 침대에서 갑자기 생각났다면서 이 제목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목 때문에 고민이 되게 많았거든요. 요즘은 힐링과 관련된 책이 많아서 제목도 그런 쪽으로 힌트를 얻으려고 했는데, 조금 어렵더라고요."(웃음)
실패, 시련, 그리고 그것을 이기는 방법
알려진 대로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한국 축구의 미래는 그가 짊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 예상했던 2002년 한일월드컵. 히딩크 감독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다. 스스로 폐인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전국을 돌면서 축구를 피해다녔고, 일상은 날마다 술이었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란다. 밑바닥에 떨어져보니 올라갈 길이 보이더란다. 전부 비우고 나자 뭔지 모를 힘이 생겼다.
4년 후 남아공월드컵. 이번에는 자신의 힘으로 일궈낸 월드컵 본선무대를 2개월 남겨두고 무릎 부상을 당했다. 또 실패. 이후 진출한 잉글랜드에서 씻을 수 없는 실패를 겪으면서, 제대로 불운한 사나이라는 오명이 붙어버렸다.
"모든 사람들에게 힘든 시절이 다 있기 때문에, 특별하게 제가 가장 어렵게 살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니까요."
어려서부터 너무 주목받는 삶을 살아온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불편하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만큼 스스로 많이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제대로 불운한 사나이가 이동국이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낸 것 또한 이동국이다. 전북현대 소속인 그는 K리그 스트라이커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하위권이던 팀을 우승으로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서른다섯, 축구선수가 서른다섯 살이면 칠십 노인이라 불리는 나이에 그는 전성기 못지않은 컨디션으로 활약하고 있다.
월드컵이라는 애증의 단어
그에게 월드컵이라는 단어는 아프다. 인연이 아니라도 그렇게 아닐 수 없다. 좌절과 고통이 컸던 자리, 유독 월드컵이 열리는 시기가 되면 이동국은 꼭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한일월드컵 때는 축구를 피해서 다녔죠. 그땐 술이 해방구였어요. 맨 정신으로 버틴 날이 하루도 없어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한계를 그때 처음 경험했어요."
1998년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던 이동국은 난리도 아니었던 2002년 한일월드컵에 국가대표 자격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해서다. 대한민국 전체가 난리가 났던 그때, 축구선수 이동국이 축구를 피해다니던 시기였다니.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부담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인생이 그런 것 같아요."
그가 기다리고 있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어쩌면 이 월드컵이 이동국 선수가 참가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
"아직은 예선전을 하고 있는데 국민들 마음은 벌써 2014년에 가 계신 것 같아요. 예선전을 다 통과한 다음에 월드컵 전략을 세우셔도 되는데요."(웃음)
하도 많이 좌절을 해서인가, 이동국은 흔들림이 없었다. 지나치게 좋아하지도, 또 지나치게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고통 속에서 대책 없이 좌절하는 순간은 그때가 마지막이었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니 인생은 자신이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좌절만 주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좌절은 결코 좌절이 아니죠.”
인생의 매니저 아내는 겹쌍둥이 임신 중
그는 알려진 대로 지난 2005년 미스코리아 출신 아내 이수진 씨와 결혼했다. 미모의 아내는 가수 은지원의 전 부인의 언니로 결혼 당시부터 뛰어난 외모로 관심을 받은 주인공. 에 서프라이즈 출연자 자격으로 얼굴이 공개된 이후 그녀의 인지도도 제대로 올라갔다.
"달라진 거는 못 느끼겠는데. 와이프가 방송에 출연한 후에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들도 있어요. 둘이서 일반인은 TV 출연 안 해야겠다, 그런 얘길 나눴어요. 힘들어하진 않았는데, 이게 몇 개월 가더라고요. 앞으로는 절대 방송에 나가면 안 되겠다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는 아내를 두고 인생 후반전의 매니저라는 표현을 쓴다. 1998년 처음 그녀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평생 소중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하와이에 사는 그녀와 데이트를 할 때 억대 통신비를 감수하면서 사랑을 키워갔다.
예쁜 부부는 결혼을 해서 예쁜 딸 쌍둥이를 낳았고, 이동국은 자연스럽게 딸바보가 되었다. 길을 걷다가도 아이를 보면 “지금 몇 개월이나 됐어요?” 하고 서슴없이 질문할 수 있는 성격이 되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에 새롭게 생긴 인생의 원칙이 있는데, 바로 아이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해주는 것이다.
아내 이수진 씨는 지금 임신 중이다. 그런데 이게 좀 재미있다. 딸 쌍둥이 이후 7년 만에 자연임신을 했는데, 글쎄 이번에도 또 쌍둥이다. 자연임신으로 쌍둥이를 갖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두 번이나 쌍둥이 임신이라니. 확률로 따지면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스페셜한 상황이다. 어쩐지 이동국의 삶은 남들과 1%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이동국 진정한 애국자다"라며 뜨거운 반응을 보내고 있다. 이동국 역시 아이들이 태어나면 차를 바꿔야겠다며 태어날 쌍둥이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아내는 임신 중이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잘 챙겨주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키워준다면서요. 7살 터울이라서 자기들끼리 잘 지낼 것 같아요.”
덤덤하게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나중에 어떤 아이를 먼저 안아줘야 하는지 벌써부터 고민이라며 행복한 마음을 표현했다.
역경을 이겨내면 경력이 된다
인생에서 한 번이라도 정상에 서본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그 자리로 올라가고 싶은 것이 속성이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을 알지만, 그 희열도 알기 때문에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한다. 그러면 신기하게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도 자신을 믿고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으로 올라서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이동국은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왔다.
"축구선수 이후의 삶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아직 은퇴라는 말도 생각해보지 않았고요. 구체적으로 뭘 하겠다, 그런 생각은 아직 안 하고 있어요."
일단 그의 머릿속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예선전을 무사히 치르는 것이다. 당장의 목표를 하나씩 이루다보면 나중에는 커다란 성과가 따라오는 것이 인생이다.
" 나갔을 때 이경규 선배님이 저에게 해주신 말씀이에요. 역경을 이겨내면 경력이 된다고요.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위기를 이겨내려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소중하게 아껴야 해요. 고통을 이겨내면 분명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저 같은 롤러코스터 인생도 즐겁죠."
은퇴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축구를 영원히 떠날 수는 없을 것 같단다. 그라운드를 벗어난 모습은 아직 상상이 안 된다고. 한 번도 축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그는 인대가 파열됐을 때도 부상을 회복해 그라운드에 서 있을 자신을 상상했다.
“가족들이랑 여행 많이 가고 싶어요. 운동선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잘 못 보내니까요. 은퇴를 하면 시간이 많이 생길 테니 잘 해주겠죠.”
인터뷰가 끝나고 간단하게 이루어진 사진촬영 시간. 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 여성 둘이 그에게 와서 인사를 한다. 익숙하게 그들과 인사를 나누는 이동국. 소녀팬이던 그들이 어느새 이렇게 자라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가정을 지키는 아내가 되었다. 프랑스월드컵 이후 공항을 마비시키던 사나이 역시 지금은 소녀 팬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푸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삼십 대 중반의 아저씨가 되었다. 세월이 많이 변했지만, 또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