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스] 이야기는 막장… 관객은 움찔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산부인과 의사 제프는 결혼 10년차에 아이도 하나 두고 있다. 아내 닐리(엘리자베스 뱅크스)와 권태기를 겪던 그는 오랜 친구이자 정신과의사인 레베카(케리 워싱턴)에게 상담을 받다가 하룻밤을 보낸다. 레베카의 남편 피터(레이 리오타)가 이 사실을 알고 제프를 협박한다. 당장 10만달러(약 1억1000만원)를 가져오든지, 외도 사실을 아내에게 말하라고.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눈송이에 지나지 않았던 제프의 선택은 눈덩이 같은 불행으로 불어난다. 제이콥 아론 이스터스 감독의 '디테일스'는 얼핏 불륜과 협박, 거짓말, 살인으로 점철된 '막장' 아침 드라마 같다. 하지만 알고 보면, 위트 넘치는 문장들로 이뤄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서늘한 냉기가 느껴지는 윤리 교과서 같은 영화다. '아내 외의 다른 여자와 자지 말라'는 식의 훈계가 아니다. 외도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아내에게 눈웃음 살살 치며 아침을 차려주기보단 자신이 생각한 죗값 만큼의 책임을 지거나 벌을 받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인(好人)보다 선인(善人)으로 살아가는 게 훨씬 힘들다. 영화는 위안이나 동감 따위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 매 순간의 선택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 게 바로 삶이니까 세상 탓,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라고 일갈한다. 그것도 웃으면서. 이토록 불편한 영화를 보고 웃으며 손뼉 칠 관객은 없을 것이다. 외도가 폭로될까 봐 외도 상대의 남편에게 10만달러를 바치는 제프에게 움찔하는 관객들을 보고 오히려 감독이 씨익 웃을지도 모르겠다. 11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월 플라워] 소재는 풋풋… 왓슨 연기는 성숙
고등학교 2학년 때 쓴 일기장을 넘겨보면 다들 창피함에 몸이 배배 꼬일 것이다. 감수성과 상상력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건 물론이고, 침소봉대의 능력은 또 어찌나 뛰어난지.
'월 플라워'를 본다는 것은 고2 때의 일기장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10대 때 지녔던 '침소봉대'의 감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찰리가 샘과 패트릭 남매를 만나 어울려 다니면서 이 세대가 했을 법한 모든 고민을 다 보여준다. 찰리는 친구가 자살을 한 데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고, 똑똑하고 예쁜 샘은 자존감이 없다. 까불까불해 보이는 패트릭도 성 정체성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25세 이상 관객이라면 시대와 문화가 달라서 종류는 다를지 몰라도 실체도 분명치 않고 딱히 해결할 수도 없는 이런 고민들로 꽤나 힘들어했던 경험이 절로 떠오를 것이다. MTV세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 불리며 미국 청소년들의 베스트셀러가 된 동명 원작 소설의 작가 스티븐 크보스키가 직접 연출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영화계를 이끌어갈 신예들의 재능을 확인시켜줬다는 것이다.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으로 얼굴을 알렸던 로건 레먼과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 역을 맡았던 에마 왓슨은 성인 연기자로서의 매력을 선보인 첫 작품으로 꼽힐 것이다. 이미 지난해 '케빈에 대하여'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에즈라 밀러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홀릴 만한 마성을 보여주는데, 대체 불가능한 배우로 성장할 그의 초기작을 본 것만 같아 설렌다. 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