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조차 몇 차례 방영된 1990년대 영화들이 극장에 다시 걸리고 있다. 1995년 개봉한 '레옹'과 2000년의 '4월 이야기'가 각각 11일과 25일 재개봉한다. 지난해 말에는 20년 만에 '데미지'(1992년 개봉)가 다시 개봉됐고, 지난 2월 다시 극장에 걸린 '러브레터'(1999)는 7일 현재 관객 3만8000여명을 동원했다. 필름으로 찍은 영화들을 디지털로 바꿔 화질이 선명하고 뚜렷해졌으며 음향도 한층 생생해졌다. '레옹'과 '데미지'는 개봉 당시 심의 때문에 삭제했던 장면들도 복원됐다. 90년대에 10대 후반~20대 초반이었던 30대가 소비력을 갖추면서 자신들의 '향수'가 담긴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본 영화 '보고 또 보고'

지금 이 영화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널려 있다. DVD나 IPTV, 인터넷 다운로드로도 다 볼 수 있는 옛 영화들을 왜 굳이 다시 개봉할까? 표면적인 이유는 이 영화들의 판권 때문이다. 1990년대에서 2000년 초반에 개봉한 이 영화들의 판권 기간(7년 이상)이 최근에 만료돼 판권 소유자가 바뀌었다. 하지만 판권을 새로 사들인 영화사들이 굳이 돈 들여 재개봉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90년대에 청춘을 불태운 관객들, 오겡키데스카(잘 지내시나요)?”90년대 흥행 영화들이 새단장을 하고 영화관에 다시 걸리고 있다. 사진은 1999년 개봉 당시 140만명을 동원한‘러브레터’.

'노킹 온 헤븐스 도어'(1998년)를 오는 5월 재개봉하는 영화사 앳나인의 주희 이사는 "극장 관객들을 대상으로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설문 조사했더니 '러브레터' '레옹'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비포 선라이즈' '해피 투게더'처럼 90년대 개봉했던 영화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고 했다. 김원 대중문화평론가의 해석이다. "90년대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80년대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가 해제되면서 외국 문화가 들어왔고, 당시 한국 영화와 차별된 외국 영화들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인 관객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일본 영화가 수입된 이래 첫 흥행작이 된 '러브 레터'가 좋은 예다. "오겡키데스카(잘 지내나요)?"라는 대사로 유명한 이 작품은 일본 영화이자 첫사랑 영화의 대명사가 됐고, 이후 한국 멜로 영화에도 정서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영화들이 개봉했던 90년대엔 지금처럼 동네마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질 않았고, 대신 집집마다 비디오 플레이어를 갖추고 있었다. 영화사 프리비전의 이광희 팀장은 "브라운관으로만 이 영화를 접했던 이들이 극장에서 제대로 관람을 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삭제된 23분 분량을 복원해 11일 재개봉하는‘레옹’.

재개봉 영화들이 1990년대에 집중된 것은 '문화적 낀 세대'가 된 30대들에게 정서적 일체감을 되살리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10~20대와 중장년층을 겨냥한 문화콘텐츠가 쏟아져 나오지만 30대의 경우 강한 문화적 소비 욕구를 가졌음에도 소비할 만한 문화콘텐츠가 빈약하다. LG경제연구원 김나경 책임연구원은 "대중음악만 하더라도 10대를 위한 아이돌 음악이 있고, 중장년층을 위한 포크, 트로트 음악이 있는데 30대를 위한 음악과 이를 즐길 만한 장소는 드물다"며 "30대 고유의 문화 상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지난해 90년대 대중문화코드를 건드린 '건축학 개론'과 '응답하라 1997', 90년대 음악만 틀어주는 주점들이 인기를 얻은 것도 이런 이유라는 설명이다.

쥬라기 공원·라이온 킹… 미국도 재개봉 붐

할리우드에서는 90년대 영화들의 재개봉 열풍이 3D로 불어닥친다. 3D로 다시 만들어진 영화들이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2011년 3D로 재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은 2주 동안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지난 5일 20년 만에 재개봉한 '쥬라기 공원 3D'는 개봉 첫 주말 1824만달러(약 200억원)를 벌어들였다. 작년엔 '타이타닉'도 3D로 재개봉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도 3D로 재개봉됐다. 2011년 디즈니사는 자사의 애니메이션 3D 재개봉 계획을 발표하면서 "유행을 타지 않는 디즈니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전 세대가 함께 즐기게 하겠다"고 했다. 미국 주간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1990년대에 흥행한 가족 영화를 3D로 만들어 재개봉하는 이유는 이 영화들을 소비했던 세대가 지금 아이를 가진 부모가 됐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겐 3D가, 그 부모들에겐 향수가 먹힌다"고 했다.

[이 영화, 다시 보려면]

▲ '러브레터', '레옹' : 영화사 프리비젼 (02)511-5836

▲ '4월 이야기' : 영화사 날개 (02)56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