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2만시간을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듬은 봉사원이 있었다. 정작 자신은 33㎡(10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잇던 가난한 할머니였다. 작년 초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1년간 투병하면서도 자신과 결연(結緣)한 90대 독거 노인을 돌봤던 천사…. 작년 12월 86세를 일기로 영면(永眠)한 한경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4개월이 흘렀다. 할머니는 떠났지만 '거룩한 삶'은 잊히지 않았다. 5일 할머니가 지역봉사회장으로 있었던 대한적십자사 대구 동구지구 봉사회원 750명 전원이 그의 정신을 기려 '봉사 2만시간' 서약식을 가졌다.
5일 한 할머니가 홀로 19년간 살았던 대구 동구 신기동의 임대아파트에는 할머니의 맏아들 윤재완(63)씨가 살고 있었다. 작은 방 한편엔 한 할머니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주변은 봉사 활동으로 받은 상패와 배지가 가득했다. 고운 천으로 정성껏 싼 보따리에는 할머니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들과 후배 봉사원으로부터 받은 편지 200여통, 봉사 일정 등을 적어 놓은 봉사원 수첩 19권이 있었다. 수첩엔 '애활원 고아 24만원 떡 두 말 전달(1982년 9월 21일)' '극빈자 가정 산모 45세대. 백미 20㎏ 6포, 미역 15줄, 연탄 250장 전달(1994년 12월 16일)' 등 글씨가 빼곡했다. 딸 윤미향(54)씨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봉사와 관련된 물건은 하나도 버리지 말라고 했다"며 "평생을 입으셨던 노란 조끼(적십자 봉사원 옷)는 당신과 함께 묻어달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날 한 할머니의 집엔 그를 그리는 후배 봉사원 5명이 찾아왔다. 파킨슨병을 앓는 맏아들 윤씨에게 밑반찬을 가져다줄 겸 들른 것이었다. 이들은 한 할머니가 투병하는 1년 동안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수발을 들었다. 요즘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차로 1시간이 넘는 충남 보령 교회묘지에 무작정 찾아간다. 최옥분(56)씨는 "아직도 회장님 사진을 보면 '옥분이 왔나' 하며 쫓아 나오실 것만 같다"며 "봉사하다가 어려운 일 생기면 그냥 회장님한테서 말 한마디 듣고 싶어 집에도 가고 묘에도 간다"며 울먹였다.
그는 수많은 이들을 도왔다. 월남전에서 팔다리가 잘려 돌아온 부상병, 가난해서 미음도 못 먹는 산모, 구걸을 하러 다니는 아이들, 거동이 힘든 독거 노인과 장애인…. 셋방살이를 하던 시절 밤마다 이들의 빨래를 하니 집주인이 "물을 너무 많이 쓴다"며 나가라고 하자, 주인집 빨래까지 도맡아 하기도 했다. 경찰이었던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쌀 한 말을 사면 남에게 다 퍼주느라 며칠도 안 돼 동났고, 자식들 옷을 어려운 애들한테 갖다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자식들은 "남 좀 그만 도우라"며 칭얼댔다.
2003년 한 독지가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연락해왔지만, "나 말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달라"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는 2010년 3월 '봉사원 은퇴식'을 가졌다. 봉사원에게 은퇴식을 열어주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나 아직 일할 수 있는데, 왜 은퇴를 시키느냐"며 봉사 활동을 계속했다.
한 할머니의 삶은 그의 자작시 '촛불'과 닮았다. "어두운 곳을 환하게 비추어 주는 촛불같이/ 이 몸을 아끼지 않고 불행한 이들을 위해/ 사랑과 생명의 빛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리라." ('촛불', 2006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