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기 논설위원

스타 강사 김미경씨가 석사 학위 논문을 표절했다는 기사가 나간 날 한 독자가 신문사를 찾아왔다. 그는 비닐봉지에 달걀 120개를 싸들고 왔다. 항의 표시로 신문사 간판에 던질 작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달걀 투척은 포기했지만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다. "김미경씨는 세상을 밝게 해주는 사람이다.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박사 학위도 아니고 석사 논문 아닌가. 조선일보에도 석사·박사 많을 텐데 모두 완벽한지 궁금하다."

표절은 어떤 경우에도 있어선 안 되는 부정행위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달걀 항의 독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석사 논문쯤이야 좀 베껴도…' 하는 풍조가 널리 스며 있다. 특히 직장인을 비롯한 일반인이 주 고객인 특수대학원은 더하다. 전국 200개 대학이 800개 가까운 특수대학원 과정을 운영한다. 대부분 야간이고, 김미경씨가 다닌 모 대학 정책과학대학원도 그중 하나다. 재학생이 18만명이나 되지만 학사 관리는 느슨하다. 특수대학원은 학자가 목표인 사람보다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력을 쌓으려는 사람이 훨씬 많이 가는 곳인데, 모든 입학생에게 무조건 논문 제출을 요구하니 논문이 부실해지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 엄격한 정통 학술 논문 기준을 들이댈 때 표절 시비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정이 이러니 최근 논란의 표적이 된 유명인들이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억울해할 법도 하다. 힘들여 정직하게 논문을 쓰는 사람보다 이리저리 베끼고 짜깁기하는 사람이 더 많고, 논문이 필요 없는 사람까지 쓸데없이 엉터리 논문을 쓰게 해 범법자로 만드는 현실에 칼을 대야 할 때가 됐다.

2000년 6월에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청문 과정에서 총리·장관·대법관·감사원장·검찰총장 등 숱한 공직 후보가 낙마했다. 가장 흔한 낙마 사유가 논문 표절, 위장 전입, 다운계약서의 이른바 '3종 세트'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공직자뿐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으레 관행으로 여겨 별 죄의식 없이 해오던 일이었다. 인사청문회는 그것이 학문 윤리와 실정법을 어기는 중대한 범법 행위라는 것을 일깨우는 전기(轉機)가 됐다.

'3종 세트'가 그랬던 것처럼 직장인·기업인·연예인들이 그럭저럭 짜맞춰 낸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는 것도 얼마 전까지는 관행이란 말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석사 논문 표절 대가로 김미경씨와 방송인 김미화씨는 진행 프로그램에서 물러나야 했고 영화배우 김혜수씨는 '석사 연예인' 훈장을 떼어내야 했다. 앞으로 비슷한 논란이 벌어질 때 더 이상 나는 고위 공직자가 아니라거나 고급 학술 논문이 아니라는 변명은 통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0년 인사청문회가 공직자 윤리 기준을 한 단계 높이는 전기가 됐듯이 2013년의 논문 표절 파문은 한국 대학과 사회의 윤리 기준을 한 번 더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석사 논문이든 학사 논문이든 표절은 더 이상 합리화될 수 없다. 학위논문뿐 아니라 작은 보고서나 과제물도 남의 것을 허락 없이 가져다 쓰는 것은 중대 범죄라는 인식을 대학은 물론 중·고등학교, 초등학교 때부터 철저히 가르쳐야 한다. 이 기회에 표절을 부추기는 특수대학원의 학위 제도도 뜯어고쳐야 한다. 기업·기관·대학이 수십 년 경력의 최고 전문가를 채용하면서까지 습관적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요구하는 학위 맹신 풍조가 이 모든 부조리의 바탕에 깔려 있다. 그것까지 바꿔야 우리 사회 전체가 비로소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