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임권택 감독이 부산 동서대에 문을 연‘임권택 영화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너무나 모자랐던 초창기 영화감독으로서의 삶이 지금 와서라도 잘 살아온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뜻밖의 사태입니다."

2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2층에 문을 연 '임권택 영화박물관'. 이날 자신의 박물관을 처음 둘러본 임권택(76) 감독은 "도망치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영화도 많이 만든 저를 위해 훌륭한 박물관을 마련해준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현역 영화감독을 위해 만든 박물관은 이곳이 국내 처음이다. 330여㎡ 규모의 박물관은 196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영화 101편을 만든 임 감독의 작품과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한다.

임 감독은 "한번은 TV에서 1960년대 '저질' 액션 영화를 우연히 봤는데 '어디서 본 듯한데 저런 영화를 만든 감독이 누굴까?' 생각하면서 끝날 때 자막을 보니 내가 만든 영화였다"면서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만든 모든 영화가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에 관련 자료를 모두 없애 버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초창기 영화의 시나리오, 콘티 등이 대부분 사라진 이유다.

임 감독은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부끄러운 영화를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각성과 반성을 하면서 조금씩 작품이 나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의 작품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임 감독은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완성된 제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들어진 영화를 볼 때마다 만족스럽지가 않아 '열 받기' 때문"이다.

임 감독은 영화 '취화선'에 나오는 그림 대부분을 그린 김선두 화백이 감독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보면서 "참, 저를 아주 욕심 사나운 사람으로 그렸다"면서 "제가 영화 작품 할 때 부리는 욕심을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낸 것"이라며 웃었다.

임 감독은 "박물관은 제 부족한 삶의 흔적들과 그걸 극복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곳"이라고 했다. "많은 분이 제 모자란 삶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과정을 보면 느끼고 배우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걸 배우고 가면 좋겠어요." 임 감독은 2008년 동서대가 영화·영상 교육을 위해 만든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석좌교수이자 명예학장으로 임용돼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