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읽기는 어린 시절부터 습관을 들이는 것이 교육적으로도 매우 유익하다. 어딜 가도 영상 매체와 SNS가 판치는 요즘, 신속성·편리성·대중전파성이 강한 이 문명의 이기(利器)들은 초등학생들을 성인 문화에 무방비로 노출·오염시켜 비교육적인 문제가 이만저만 아니다. 신문과 같은 인쇄 매체는 성찰이 먼저이고 반응은 나중이지만, 영상 매체와 SNS는 그 반대다. 이렇다 보니 사색과 논리는 실종되고 '나꼼수' 같은 조롱이 판을 친다.
영상과 디지털 정보가 허망한 이유는 생각보다 직감이 앞서고, 또 금방 잊어버리는 휘발성에 있다. 디지털 풍요를 누리고 있는 우리 사회는 역설적으로 그 풍요만큼 경박(輕薄)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영혼을 말하는 소설가·성직자들까지 트위터라는 지성의 혼돈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고, 최근에는 국가의 양심 세력이자 최후의 보루인 판사까지 가세한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아이들까지 어른들 흉내를 내는 데 있다.
풍부한 어휘는 언어생활의 품위와 지성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부터 신문 읽기를 통해 어휘력과 독서 습관을 자연스럽게 키워야 한다. 신문은 정보를 문자 위주로 담고 있으며 그 압축되고 정제된 정보의 신뢰도 또한 매우 높다. 학교에서 신문 활용 수업(NIE)을 통해 어린이들의 학습과 고급 언어 습득, 건전한 가치관 형성 등의 순기능이 지대함은 이미 여러 연구 사례가 방증한다. 한데 어린이 신문의 유료 구독에 따른 부담감으로 활성화가 제약되는 측면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회계 감사의 경직성으로 학교장은 신문 구독을 기피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한다. 왜냐하면 부교재 성격의 신문 구독이 청렴 문제로 번지는 스캔들이라도 생기면 학교장은 유리창에 '쩍' 하고 금이 가듯 일평생 일궈온 명예가 일순(一瞬)에 추락한다.
차제에 교육 당국에 건전한 어린이 언론 문화 창달을 위한 특별 예산 편성을 주문해 본다. 초등학생들의 언론·문화 교육 투자는 단기간에 성과물이 나오지 않는 특수성이 있다. 신문을 읽고 배우며 토론함으로써 언론 의식, 민주 의식 등 올바른 시민적 소양을 키울 수 있다. 어린이들의 오염된 문화의 사후 치유보다는 예방 교육이 더 경제적이다.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어린이 문화에 신문 읽기는 등대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