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가 25일(현지 시각) 유럽연합(EU) 등 국제 채권단과 구제금융안에 합의,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퇴출을 피할 수 있게 됐다.
EU는 금융 위기에 시달리는 키프로스에 100억유로(14조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58억유로(8조3500억원)의 추가 구제기금을 마련할 것을 키프로스에 요구해 왔다. 애초 은행 예금에 세금을 매겨 이 돈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지난 19일 키프로스 의회가 이 방안을 부결했다.
양측은 이번에 키프로스의 양대(兩大) 은행인 키프로스 은행과 라이키 은행의 10만유로(1억4000만원) 이상 계좌에 최대 40%의 분담금을 부과하는 대신 소액 계좌는 전액 보전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또 부실이 심한 라이키 은행을 폐쇄하고, 우량 자산은 키프로스 은행으로 통합하기로 결정했다고 BBC 방송이 보도했다. 키프로스 은행의 총 예금액 680억유로(98조원) 가운데 10만유로 이상 계좌는 380억유로(55조원)에 달한다. 협상에 참여한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이번 합의안은 키프로스 의회의 별도 비준 없이 지난 22일 의회에서 통과된 은행 구조조정 법안으로 당장 시행 가능하다"고 말했다.
니코스 아나스티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은 24일 직접 벨기에 브뤼셀에서 헤르만 반 롬푀이 EU 정상회의 의장과 유로존 재무장관 등을 만나 협상을 진행했으며, 25일 새벽에 최종 협상이 타결됐다.
키프로스 위기는 발등의 불만 껐을 뿐 완전히 극복된 것은 아니다. 우선 키프로스 은행 총 예금의 35%가량을 차지하는 러시아의 반발이 변수다. 만약 러시아가 키프로스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면 키프로스 경제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은행에 대한 불신 때문에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 우려도 여전하다. 키프로스 정부는 지난 18일부터 시작한 은행 영업정지 조치를 당분간 유지하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한 예금 인출도 하루 100~120유로(14만~17만원)로 제한하기로 했다.
키프로스에선 예금자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거리에는 구제금융안을 주도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히틀러에 비유하는 피켓이 등장하고, "독일은 이 나라를 떠나라"는 구호가 터져 나오고 있다.
키프로스뿐 아니라 경제 위기에 시달리는 남유럽에선 반(反)독일 감정이 비등하다. 지난해 10월 메르켈의 그리스 방문 때는 나치 복장을 한 시위대가 등장했으며, 이탈리아 신문은 현재의 독일을 히틀러의 제3제국에 이은 제4제국에 비유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독일 방송 '도이처 벨러'는 "독일은 유럽 구제금융에 가장 많은 돈을 내고도 강경한 태도 때문에 악한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에도 키프로스는 연기금 등을 활용해 추가 구제기금을 마련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독일은 "구제금융이 러시아 예금자의 주머니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며 '예금 과세'를 관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