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평 좁은 무대에 배우는 단 두 명. 의자 하나와 기울어진 탁자, 벽에 걸린 해골모형이 소품의 전부다. 허름한 공연장에 열기가 넘쳤다. 60석을 채우고도 모자라, 무대 좌우에 둘러앉고 출입구에 걸터앉은 관객 70여명 때문이었다.
지난 13일 오후 7시 30분, 포항시 북구 상원동 김삼일자유소극장의 개관 공연 '노배우의 고백' 막이 올랐다. 무대와 1열 관객의 거리는 불과 서너 걸음. 이날 첫 공연은 기분 좋게 만석(滿席)으로 시작했다. 단체 관람객 덕분이었다. 포항 영일고등학교 2학년 1반과 2반 학생들이 자리를 메웠다. 관람료는 학생 할인가인 5000원. 관람료는 학생 각자 냈다. 학생들을 몰고 온 영일고등학교 최상하 교장의 원칙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연극을 봐야 창의적이며 감성을 가진 인간이 된다" "연극을 볼 때는 반드시 제값을 내고 봐야 한다"는 게 최 교장의 교육 철학.
'노배우의 고백'은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백조의 노래'를 각색한 작품이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극단에서 퇴출당하는 한 배우의 인생 고백을 담았다. "이곳에 내 전부를 바쳤어. 그 모든 게 어디로 사라진 거지? 이 무대가 내 인생 45년을 삼켜버렸어!" 노배우 역을 맡은 최희만씨의 얼굴을 따라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하던 다른 배우의 눈에도 물기가 어렸다. 공연을 본 2학년 이동하군은 "힘이 넘치는 연기를 눈앞에서 보니 '이런 게 연극이구나' 알게 됐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삼일자유소극장은 연출가 김삼일(71)씨가 50년 연극 인생을 바친 공간〈본지 2월 6일자 A23면 보도〉. 지방에서 소극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다. 이제까지는 성공한 사례가 없다. 그래서 연극 평론가 유민영 서울예대 석좌교수는 김삼일씨를 '기적의 연출가'라고 부른다. 지방 연극에 기여한 남다른 열정으로 2004년 제14회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김씨는 "죽을 때까지 지방에서 연극 한번 살려보겠다"는 각오로 이번에 자신의 이름을 건 소극장의 문을 열었다. 공연은 내달 7일까지 이어진다. '노배우의 고백'은 12년간 포항시립극단 상임 연출가로 일했던 그의 143번째 연출작. 김삼일씨는 "이렇게 행복한 순간을 맞은 것은 연극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소극장은 제 마지막 꿈입니다. 이곳에서 관객과 함께 마음껏 꿈꾸겠습니다." 그는 "내달 8일 이후에는 관객 주문 공연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연 시각을 따로 정해두지 않고, 관객이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각에 올리는, 관객을 위한 공연장을 만들겠습니다. 오전 10시도 좋고 오후 11시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