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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옥 고용노동부 신임 차관(56)은 중앙노동위 상임위원(1급)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가 1년 만에 다시 복귀했다.

지난해 1월 공직을 떠나면서 정 차관은 공직자로서 소명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드럼연주' 등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보냈다.

공직자의 길을 미련없이 떠났다가 차관으로 다시 돌아온데 대해 정 차관은 "지난해 공직자로서 소명이 다한 줄 알고 꿈을 꾸는 소녀처럼 좋아하는 드럼을 치고 소설쓰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임명을 받게 됐다"며 "공직자로서 해야할 일이 남았다는 하늘의 뜻으로 알고 따르겠다"고 밝혔다.

정 차관은 정신수양 차원에서 기 수련도 몇 년동안 해왔다.

때문에 이번 차관 인사를 두고 정 차관은 "기 수련에서 배운 이치로 '집착을 내려놓으면 잠재의식 속에서 원했던 일이 하늘의 기운을 받아 이뤄진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여성으로는 4번째로 행정고시(28회)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한 정 차관은 금녀의 벽을 허물며 주목을 받았다.

1985년 노동부 사무관으로 공직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부처 내 여성공무원은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유일했다.

그러다보니 과장으로 부서를 옮길 때마다 '최초 여성과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2005년에는 여성부를 제외한 전 부처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공보관 자리를 맡았고 2007년에는 지방노동청장(경인지방노동청장) 자리에 여성으로 처음 올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빨리 보직을 받는 것이 싫어 2004년 부이사관으로 승진하면서 곧바로 여성 관련부서의 국장급 보직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하기도 했다.

일로 평가받겠다는 소신을 가진 정 차관은 근로기준과장이던 2001년 주 44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바꾸는 개정안 작업을 모두 마무리했고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위한 초석도 다졌다.

근로시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기획예산과장으로 옮겨갔던 당시를 회상하며 정 차관은 " 열정과 사력을 다해 개정안을 만들었는데 마무리를 하지 못해 피눈물을 흘리고 부서를 옮겨갔었다"며 "그때 '일은 사람이 하지만 뚜껑은 하늘이 얹어주는 것이다'는 것을 배우며 많이 겸손해졌다"고 말했다.

한번 일을 하면 집요하게 파고들어 주도면밀하게 추진하는데다가 일 못하는 후배들에게 야단도 엄하게 치는 편이라 정 차관을 무서워하는 후배 공무원들도 많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어설프게 일을 하면 바로 알아보고 호되게 야단을 치기 때문에 정 차관 밑에서 일하면 '일복이 터진다', '약점이 드러난다' 등 이유로 무서워하는 공무원들이 많다"며 "특히 남자 공무원들은 '정 차관과 같은 부서에서 안 만났으면 좋겠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하곤 했다"고 전했다.

완벽한 스타일의 정 차관을 남자 후배들은 두려워하지만 여자 후배들은 '왕언니'라 부르며 곧잘 따르는 편이다.

정 차관은 "금녀의 벽을 허물며 험난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여자 후배들의 고민을 척하면 알아듣고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니까 여자 후배들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화끈한 통솔력과 추진력으로 정 차관은 '여장부', '장비' 등 별명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섬세하고 소탈한 면도 있다.

수준급으로 드럼연주를 하고 와인을 즐겨마시며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를 하고 마음의 수양을 위해 '기 수련'을 하는 등 여성스러운 취미와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다.

정 차관은 노사정위원회 운영국장과 경기지방노동청장,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맡으면서 노조와 인맥관계도 넓은 편이다.

고용정책 전문가이자 외부인사인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을 보좌해 정 차관은 노사관계 문제를 처리하고 조직장악의 통솔력을 발휘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