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더자이언트킬러

할리우드의 최신 트렌드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 두 편이 1주 간격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2월28일 개봉한 브라이언 싱어(48) 감독의 '잭 더 자이언트 킬러'(Jack the Giant Slayer)와 7일 개봉한샘 레이미(54) 감독의 '오즈 더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Oz the Great and Powerful)이다. 시차를 고려하면 두 편 모두 미국과 동시 개봉이다. 주인공의 이름에 거창한 수식어를 단 제목 형식까지 엇비슷한 두 영화는 동화의 재해석과 3D아이맥스까지 끌어들인 첨단 시각효과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근 1세기동안 영화를 만들어오며 소재 고갈에 직면한 할리우드는 과거 영화나 타국 영화를 리메이크하거나 기존 시리즈의 프리퀄, 즉 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을 만드는 등의 탈출구를 찾아왔다. 최근 몇년새 동화를 재해석하며 이를 보다 향상된 촬영기법과 시각효과로 재가공하는 것이 유행이다. 어린이들이나 보는 것으로 여겨지며 애니메이션화 됐던 동화들이 팀 버턴(55)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를 기점으로 '레드라이딩 후드'(2011), '비스틀리'(2011), '백설공주'(2012), '스노우화이트 앤 헌터맨'(2012),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2013) 등 성인들까지 즐길 수 있는 실사영화로 줄줄이 재탄생하고 있다.

'유주얼 서스펙트', '엑스맨' 시리즈 등으로 이야기를 현란하게 주무르는 솜씨를 보여온 브라이언 싱어의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잭과 콩나무'라는 동화로 잘 알려진 구전을 바탕으로 했다. 이 동화는 영국 콘웰 지역 민화로 전해내려오는 '잭 더 자이언트 킬러'라는 아서왕 시절 거인을 무찌른 청년의 이야기와 연결돼있다. 3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가장 먼저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의 트롤로지를 완성했고, '이블데드'로 시작해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해온 샘 레이미가 메가폰을 쥔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은 L 프랭크 봄의 원작 동화 '오즈의 경이로운 마법사' 시리즈의 프리퀄이다. 주디 갈랜드가 도로시 역을 맡은 고전 뮤지컬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에서 늙고 괴팍한 마술사로 잠시 등장하는 오즈(프랭크 모건)가 애초 어떻게 오즈로 흘러들어가게 됐는가가 그려진다.

두 영화 모두 비주얼에 몹시 기대는 영화들이라 이들 감독의 작가적 역량이 발휘될 부분이 그다지 없는 것은 안타깝다. 동화의 교훈이 으레 그렇듯 선악대결에서 선의 승리, 남녀주인공의 로맨스 등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기에 바쁘다.

◇현실적이고 역동적인 간투아 vs 비현실적이고 화려한 오즈 판타지 영화의 가장 큰 부분은 역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발달된 CG기술로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잭~’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거인들의 세상 ‘간투아’, ‘오즈~’에서는 열기구를 타고 있다가 거대 회오리에 휩쓸려 흘러들게 되는 환상의 나라 ‘오즈’가 그 대상이다.

‘잭~’에서 간투아는 거대하게 자란 콩나무를 타고 올라간 곳에 위치하고 있긴 하지만 현실세계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숲과 바위로 이뤄진 곳에 지상에서와 마찬가지 크기의 양과 돼지 등이 자란다. 거인들도 인간의 4배이상으로 키가 크고 못생기고 더러울 뿐 인간의 외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피부표현 등에 엄청난 공을 들인 것이 티가 난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거인들에게 ‘지구’의 모습이 반영되길 바랐다”면서 “피부표면이 얼핏 보기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부스럼인지 조약돌인지, 털인지 잡초인지 궁금하게 만들어 수 천년 동안 고립되고 방치된 시간을 보여준다”는 의도를 밝혔다. ‘아바타’에서 사용된 실시간 증강현실 시스템인 시뮬캠을 도입해 거인 각각의 개별성을 잘 드러낸 것도 특징이다.

거인들의 움직임과 인간과의 만남에서는 섬세한 역학적 계산이 반영됐다. 8m 크기의 거인들이 날렵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동작들은 다양한 비율 실험을 거쳐 결정됐으며 이를 통해 위협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거인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인간의 모습이나, 잭이 물속에서 누워 수면 위의 거인들을 올려다보는 모습 같은 것들도 굉장히 치밀한 시각적 산출로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3D입체영상 이상의 실감나는 화면으로 ‘영화의 일부가 되라’는 캐치플레이즈를 내걸고 있는 아이맥스의 이상을 잘 구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인간들의 세계인 클로이스터나 현대의 런던을 소형 비행기라도 타고 지나가며 내려다보는 것같은 신이나 하늘로 뻗어오르거나 베어져 쓰러지는 콩나무의 덩굴이 휘둘리는 모습은 마치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 실제 이상의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어지러움을 느낄 수도 있을 정도다.

‘오즈~’는 3D 영상혁명을 이뤄냈다는 극찬을 받은 ‘아바타’와 제83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미술상을 받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프로덕션 디자이너를 맡았던 로버트 스트롬버그가 다시한번 프로덕션 디자이너를 맡아 초현실적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오즈의 마법사’와 똑같이 영화속 실제세계인 캔자스는 흑백, 오즈는 컬러로 찍었다. 그만큼 오즈는 상대적으로 화려하고 신비한 색채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만 울긋불긋한 대형 꽃들이 피어나는 모습은 이젠 3D 판타지영화의 전형처럼 여겨져 다소 식상하게 느껴진다.

두 영화 모두 돌덩이나 눈송이, 혹은 새가 바로 눈앞으로 날아드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는 3D영화의 잔재미들은 요소요소에 적절히 가미했다.

'잭~' 쪽이 더 박진감 넘치기는 하지만 '오즈~'는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볼거리들이 넘친다. 오즈 내의 다양한 지역 풍경들을 정교하게 조성해냈다. 여러 종족들, 날개달린 원숭이와 도자기 인형소녀를 비롯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새, 이빨요정 등을 통해 치밀한 CG와 상상력의 결합을 보여준다. 판타지 영화속 비주얼 효과가 어디까지 진보됐는지 궁금하다면 현재까지 보여질 수있는 극대치를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두 영화 모두 엔딩크레디트에 오르는 시각효과 관련 참여자들의 리스트가 어마어마하게 길다. 주목할 만한 것중 하나는 애니메이터와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 등 시각효과(VFX) 분야에 한국인의 진출이 눈부시다는 점이다. 흐르는 이름들을 쭉 지켜보다 보면 한국계로 짐작되는 성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고도의 집중력과 과학적 조형능력, 꼼꼼한 테크닉까지 요구되는 분야라 솜씨좋은 아시아계가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잭~’에서는 이동호씨가 타이틀디자이너로 참여해 눈길을 끈다. ‘프로메테우스’와 ‘아이언맨’의 홀로그램 디자인, ‘슈퍼맨리턴즈’, ‘스파이더맨2’의 메인 타이틀 시퀀스를 담당하는 등 비주얼 이펙트 부문에서 주류로 우뚝 선 그는 ‘잭~’에서는 메인 타이틀 시퀀스 작업에 참여했다.

◇‘잭’ 니컬러스 홀트 vs ‘오즈’ 제임스 프랭코

두 영화 모두 남자주인공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세우고 있으니, 이 역할을 맡은 두 배우의 매력과 연기력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잭~’에서는 ‘영국의 유승호’라고 불리는 니컬러스 홀트(24), ‘오즈~’에서는 TV영화 ‘제임스 딘’(2001)으로 골든글로브 TV부분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한 제임스 프랭코(35)가 각각 타이틀롤을 맡았다. 두 사람 모두 완벽하지 않지만 어딘가 채워주고 싶은 모성본능을 일으키는 캐릭터들이다. 한쪽 입술만 들어올리며 씩 웃는 특유의 웃음이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어바웃 어 보이’(2002)에서 휴 그랜트(53)와 공동주연을 맡으며 아역스타로 떠오른 홀트는 잘 성장한 아역배우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아역의 이미지 때문인지 껑충한 키에 20대 중반에 다다른 현재까지 여전히 10대 같은 미성숙하면서도 풋풋한 매력을 풍긴다. ‘잭~’에서도 189㎝에 달하는 키와 V라인 턱의 작은 얼굴로 수줍은 미소년의 풍모를 보여준다.

미천한 농부에서 공주를 구출하는 용사로 변모하는 잭의 성장기라는 점에 걸맞아, 몇 명 안 되는 배우 후보군 중 별 망설임없이 1순위로 선택됐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직 완성된 남자라고 보기 어려운 소년다움이 걸렸던 듯, 잭이 롤모델로 삼아 따르는 엘몬트 역을 맡은 이완 맥그리거(42)의 극중 비중도 만만치 않다.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임에도 너무 현대적 청년같은 태도를 보여주는 연기도 좀 거슬린다.

반면 30대 중반에 다다른 제임스 프랭코는 한결 성숙한 남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허름한 유랑 서커스단 소속의 3류마술사지만 대단한 인물이 되고 싶다는 야망을 품고, 사기꾼 허풍선이 기질로 여자들을 사로잡는 바람둥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마성'을 풍긴다. 호소력 있어보이는 눈빛, 지성과 우수가 드리워진 마스크가 그를 나쁜남자로 보이지 않게 해준다. UCLA 영문과 출신으로 내성적 성격을 바꾸기 위해 연기를 시작했다는데 굉장한 노력파임을 엿볼 수 있다.

아무래도 지명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애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48)와 조니 뎁(50)이 오즈 역으로 거명됐으나 최종적으로 제임스 프랭코가 이 역할을 맡으면서 한결 젊은 오즈를 만날 수 있게 됐다. 레이철 와이즈(43), 밀라 쿠니스(30), 미셸 윌리엄스(33) 등 마녀 역을 맡은 3명의 명성있는 여자배우들을 이끄는 리딩롤을 맡아 배우로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위치를 점하게 됐다는 점은 개인적 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