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당시 16세였던 성호(아라타)는 조총련 간부였던 아버지 때문에 북한으로 건너갔다. 북한에서 자라고 가정을 꾸린 그는 뇌종양 치료를 위해 북송(北送)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을 찾는다. 말도, 표정도 없는 그는 여동생 리에(안도 사쿠라)에게 말한다. "넌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

'가족의 나라'는 재일 교포 양영희(48·사진) 감독이 자신과 가족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극영화다. 그는 10여년간 평양과 일본을 오가며 1970년대 북송된 오빠 둘과 가족들을 카메라에 담아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이란 다큐멘터리 두 편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으로부터 입국 금지 조치를 당한 그는 '가족의 나라'로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국적은 한국이고 고향은 일본, 북한은 산 적도 없는데 조국이라고 배우며 자란 양영희 감독은 "어떤 나라의 국기 티셔츠도 못 입는다. (국가는) 알레르기가 있다고 할 정도로 싫은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가족의 나라'란 제목과 달리, 이 가족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25년 만에 만난 여동생에게 오빠는 "조국의 스파이가 돼달라"고 말하고, 조국에 충성한 아버지는 자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된 아들에게 미안하다. 리에는 오빠를 데려가고 가족 방문에 감시자(양익준)까지 붙인 조국이 밉다. 이들에게 민족이나 국적, 조국은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오빠의 조언에 따라 리에는 여행 가방을 들고 길에 나서지만, 어딜 가든 그의 조국은 여행 가방보다 더 무거운 짐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양영희 감독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일본을 방문한 오빠가 차를 타고 가버렸을 때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서 있었다”며 울었다. 그는 현실에서 못 했던 것을 영화에선 이뤄냈다. 사진은 영화‘가족의 나라’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에 있었던 감독의 내레이션마저 걷어낸 이 영화는 담담하다 못해 건조하기까지 하다. 그저 관객을 울리기 위해서라면 성호와 가족 간의 헤어짐을 웅장한 음악과 함께 눈물바다로 그려낼 수도 있었고, 리에의 일장 연설로 비장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신 치료도 받지 못하고 북한에 돌아가야 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흔들리는 눈빛과 떠나는 오빠의 차를 따라잡으려는 누이동생의 발걸음으로 관객을 지긋이 압박한다. 이데올로기나 역사를 들먹이지 않고도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비극을 가장 탁월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양 감독은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매일 밤 침대에 들어가면 '평양에 있는 오빠들이 괜찮을까'하는 생각을 하는데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에고이스트(이기주의자)니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기적으로밖에 못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펼쳐놓기 위해 감독이 얼마나 치열한 고민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가족의 나라'는 울고 싶지만, 소리치고 싶지만 그 충동을 가슴속 깊이 꾹꾹 밀어 넣는 영화다. 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