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히 혁명을 꿈꾸다 독재의 늪에 빠진 다변가'(미국 CNN) '로빈후드로 불린 가난한 자들의 영웅'(영국 이코노미스트) '미국과 남미 사이에 확실한 쐐기를 박아 유산으로 남기다'(미국 크리스찬사이언스모니터). 차베스가 평생 '제국주의자들'이라 비난했던 영미 국가의 언론들은 5·6일 차베스 부음 기사에서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양극단의 인물"이라며 그의 14년 통치의 명암을 조명했다.
차베스는 1954년 바리나스주의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야구 선수를 꿈꿨던 차베스는 청소년기에 19세기 남미 독립운동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와 카를 마르크스, 체 게바라 등에 감화돼 사회주의적 이상에 빠져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1982년 당시 부패한 우파정권에 대항해 '볼리바르 혁명운동'을 창설했고 10년 뒤인 1992년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당시 강제로 항복 연설을 하는 베레모를 쓴 청년 장교 차베스는 오히려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2년 복역 후 사면돼 중령으로 예편한 뒤 전국 100일 대장정을 하며 세력을 모아 좌파정당을 창설했다. 차베스는 1998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래 2000·2006·2012년 선거에서 계속 대통령에 당선돼 14년간 연임했다.
그는 2011년 암 투병을 시작했지만 지난해 10월 생애 네 번째 대선에 나서 승리하는 등 권력 의지를 놓지 않았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해 지난해 12월부터 공식석상에 나서지 못하고 올해 1월 취임식도 무기 연기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차베스가 지난달 치료를 받던 쿠바에서 귀국했다고 밝혔지만, 차베스가 이후에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차베스는 부유한 사회주의를 표방한 '21세기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다. 세계 제1의 원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의 대통령인 차베스는 2000년대 국제 유가 급등으로 엄청난 통치 자금을 확보했다. 그는 미국 엑손모빌 등이 소유했던 국내 석유회사 등 사기업을 국영화하고 토지를 몰수한 뒤 무상 교육, 무상 의료 정책을 펼쳤다. 대외적으론 쿠바·에콰도르·볼리비아와 카리브해 좌파 국가를 연합해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을 창설, 이들에게 저렴하게 원유를 공급하면서 미국이 제시한 경제·정치 모델에 대항했다. 이 '석유외교(petrodiplomacy)'를 통해 남미뿐만 아니라 이란·리비아·북한 등 전 세계 반미 정권과 연대했다.
그러나 차베스 집권 기간 베네수엘라 정치는 후퇴하고 경제는 곤두박질 쳤다. 사법부와 의회, 군, 선거관리기구 등 주요 국가기관이 모두 권력의 사유물이 되고 야당과 언론은 탄압 당했다. 사회주의 독재를 견디지 못한 지식인과 과학자, 의사, 기업인 등 인재가 대거 빠져나갔다. 인프라 건설 등 장기적 투자와 일자리 창출보다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한 무상 복지와 현금성 혜택 분배에 치우치면서 무능과 비효율, 공직 부패가 만연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다른 남미 국가보다 나을 것이 없고, 인플레이션 수치는 남미 평균의 6배에 달하며, 실업률은 30%대를 넘나든다"고 전했다.
차베스는 일요일마다 생방송 대통령 담화를 통해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해악'부터 '샤워 때 물을 아끼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국민에게 모든 것을 정력적으로 설교했다. 설교가 한 번에 12시간씩 이어지기도 했다.
술과 유흥을 즐기지 않는 차베스는 하루 25잔씩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두세 시간만 자고 일했다고 한다. 두 차례 결혼은 모두 이혼으로 끝났으며 지난 10년간 퍼스트레이디 자리는 비어 있었다. 자녀는 4명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