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린 지 1년 뒤인 1989년 가을, 45세 남종현은 운영하던 전자부품 회사의 문을 닫았다. 일본에서 수입한 기계에 결함이 생겨 일본 업체와 분쟁을 벌인 끝에 사과를 받아내고 보상까지 약속받았지만, 이미 회사는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은 뒤였다.

첫 사업의 실패였다. 하지만, 그는 실의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재기해 성공할 것이라는 결의를 불태웠다. '내 반드시 일본인들이 내가 만든 제품을 사도록 하리라.'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0년 4월 그는 일본으로 수출되는 '여명 808'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 트럭이 공장 앞마당을 나서는 것을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늦깎이로 시작한 발명가이자 기업인의 삶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래미 남종현(69) 회장은 자기를 기업가보다 발명가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는 국내외 특허를 46개 갖고 있다. 상표권을 비롯한 각종 지식재산권은 440개에 달한다. 직원 80명 연 매출 350억원 회사치고 상당히 많은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셈이다.

고구려의 벽화에 나오는 '삼족오' 문양의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 12개국 상표권도 갖고있다. 남 회장은 발명가의 길을 걸으면서 순탄한 삶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원료를 찾기 위해 전국의 산과 들을 뒤지고, 실험을 거듭하며 무수한 밤을 지새웠다. 여명808도 807번 실패하고, 808번째 실험에서 성공한 제품이라는 의미다. 발명의 날 철탑산업훈장, 금탑산업훈장, 장영실과학상 등을 받은 그는 요즘 청소년 발명 경진대회를 후원하고 있고, 국내 발명가들을 돕는 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강원도 철원 ㈜그래미 본사 1층 연구실에서는 항상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남종현 회장이 화상 치료제에 들어가는 천연 재료 추출물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세 번째 발명 아이템으로 성공한 여명808

―언제부터 발명을 했나.

"마흔이 다 돼 이 길로 접어들었다. 전자부품 회사를 운영하다가 접은 뒤, 전국의 산천을 돌아다니며 재기(再起)를 꿈꿨다."

―어떤 전자부품을 만들었길래.

"크리스털 유닛 또는 수정진동자라고 하는 제품인데 원격조종기나 리모컨에 들어가는 필수 부품이다. 세계에서 만드는 나라가 몇 안 될 때여서 경제기획원 장관상도 받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격려금으로 5000만원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런데 왜 사업을 접었나.

"거액을 들여 수입한 기계에 문제가 생겼는데 일본 업자가 고쳐주지를 않았다. 일본 회사들은 한국에서 크리스털 유닛을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일본인 기계 회사 사장이랑 보상 문제를 매듭지으려고 함께 잠적했다가 신문에 무역 분쟁으로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일본을 한번 꺾어보리라는 생각에서 일본의 인공 조미료 MSG와 대결할 수 있는 천연 조미료를 다음 사업 아이템으로 잡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 회사 이름이기도 한 '그래미 육향'이다. 그래미는 '그래 이 맛이야'라는 뜻이다."

―조미료는 지금 생산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아주 소량을 생산해서 몇몇 프랜차이즈 외식업체에 주고 있다. 다들 음식 맛 좋기로 유명한 집이다."

―그렇게 좋으면 왜 더 만들지 않나.

"처음에 대기업에 납품했는데 너무 헐값으로 시중에 유통하는 바람에 회사가 망할 뻔했다. 도저히 우리 자체적으로는 팔 수 없을 정도의 싼 가격으로 시장에 풀리다 보니, 대기업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겠더라. 가만히 보니 대기업은 우리 회사가 부도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러면 우리 회사를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다행히 어음을 끊지 않았고 외상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해도 소용이 없어 그것도 접고 여명808에 매진했다. 결국 이 세 번째 제품이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왜 하필 숙취 해소제를 만들 생각을 했나.

"첫 사업을 접고 전국의 절을 떠돌아다니던 시절 여러 가지 나무와 풀의 효능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옛날부터 오리나무를 술에 넣어두면 술이 순해진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에 착안해 개발했다. 체내에서 알코올 분해 속도를 빠르게 하는 제품인데 해외에서 열린 발명 경진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원래 술을 좋아했나.

"많이 마셨다. 술을 이고는 못 가도 먹고는 갈 정도였다. 지금은 안 마신다."

―본인 스스로 임상시험을 많이 했겠다.

"그렇다. 사업하면서 술 먹고 비틀거리면 안 되니까."

―대학에서 화학이나 식품 쪽을 전공했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파라치온'이라는 농약이 당시 새로 나왔는데 그것을 뿌리다가 그만 중독이 되셨다. 그해에 그 농약 때문에 많은 아버지가 목숨을 잃었다. 나는 장남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군 복무를 마치고 바로 공무원이 됐다."

―사업은 어떻게 시작했나.

"공무원 생활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인가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꿈과 야망을 실현하려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인생을 바꾸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발명을 할 아이템을 찾아다녔고, 생각이 굳어지자 사업을 시작했다."

―공무원 생활은 어디에서 했나.

"첫 사업 아이템으로 삼았던 원격조종기나 VCR을 1970년대부터 자주 접하는 분야에서 일했다고만 해달라."

특허만이 살길이다

㈜그래미의 강원도 철원 공장과 본사에는 남 회장의 발명역사관 건물이 있다. 그곳에는 그동안 그가 국내외에서 수상한 발명 관련 내역과 특허 기록 등을 모아놓고 있었다. 그리고 전시장 한편에는 작은 도서관처럼 지난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특허공보 수백권이 꽂혀 있었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개인적으로 들춰보던 것들이라고 했다.

―특허공보를 모은 이유는.

"우리나라는 1973년부터 특허공보가 나왔다. 60년대까지는 특허 관리가 무척 허술했다. 특허공보가 나오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모으기 시작했다. 발명을 하려면 어떤 것이 특허로 등록되는지를 알아야 하니까."

―원래 발명에 관심이 있었나 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등록되는 특허 상당수가 일본인 아니면 미국인이 낸 특허였다. 내가 1996년에 받은 여명808 특허 번호가 9만번대인데, 그 시점에 일본은 특허 건수가 200만, 미국은 600만이 넘었다. 이 정도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왜 특허가 적었을까.

"1945년에 해방되고 60년대까지 상공부에 특허계가 있었다. 직원 한 명이 담당하는 일이었다. 누가 무슨 특허를 내는지도 제대로 몰랐을 것이다. 그러다가 1972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특허를 왜 방치하느냐'고 지적하면서 특허과로 격상됐다. 그때부터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발명 강국이 되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떤 특허를 내는지 우리 정부가 연구해야 한다. 그걸 모르면 맨날 다른 나라 뒤꽁무니만 따라다니게 된다."

―해외 특허도 갖고 있던데.

"WTO(세계무역기구) 체제가 들어서기 전에는 국제 특허만 내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통했는데, 지금은 나라마다 특허를 내야 한다. 특허 사용료를 내고 20년 동안 해당 국가에서 배타적 사용권을 갖는 것이다. 그러다 20년이 지나면 아무나 만들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그때 다른 사람이 특허 내용대로 만들어 보고 같은 제품이 안 나오면 특허권자가 배상을 해줘야 한다."

―특허 등록을 하는 비용은.

"유럽은 한 번 등록하려면 6000만원, 미국은 1500만~2000만원 사이다. 정확하게 만들지 않으면 특허가 거절당하기도 한다. 특히 선진국에 등록할 경우 좋은 변리사를 사서 하지 않으면 잘못했다가 그들한테 아이디어만 빼앗길 수도 있다."

―기술과 원료를 공개하면 특허침해는 없나.

"여명808만 해도 140종이나 되는 모방품이 나왔다. 미국에서 코카콜라가 특허를 내지 않는 이유도 아이디어를 지키기 위해서다. 특히 특허 관련 분쟁은 변리사가 잘 아는데 우리나라에서 변리사는 재판에 못 나간다. 그러다 보니 특허 내용을 잘 모르는 변호사가 법정에서 다툰다."

―국내는 특허 보호가 잘 안 되나.

"밤을 지새우고 코피 쏟으며 만들어서 발명의 기쁨을 느끼는데, 특허 나고 1년 지나면 모방하는 사람이 생긴다. 특허가 잘못됐다고 무효 소송도 들어온다. 외국은 특허 받기가 어려워도 한번 내주면 철저히 보호해주는데 우리는 발명하면서 밤새우는 것보다 변호사들하고 싸우는 게 더 힘들 정도다."

―여명808은 몇 나라에 특허가 나 있나.

"미국 일본 독일 호주 등 세계 11개국에 특허를 냈고, 17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수출 물량도 많은 편인가.

"기대만큼 성공한 것은 아니다. 시기를 놓쳤다. 처음 여명808을 들고 해외 발명 경진대회에 갔을 때 프랑스 스위스 등의 방송에도 나오고 호평을 받았다. 바이어들이 몰려왔는데 하필 그때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단속을 나왔다. 제품 용기에 '숙취 해소용'이라는 말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수출 계약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못 팔아도 외국에 파는 것까지 단속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했는데도 말이 먹히지 않았다. 결국 1999년에 식품위생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해서 2000년 3월에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그리고 식품위생법이 바뀌었다. 초기에 수출을 좀 더 많이 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고집이 센 것 같다.

"고집이 세지 않으면 발명을 못 한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한다. 포기하는 순간 내 인생도 포기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1년에 자영업이 80만개 생기고, 그중 68만개가 없어진다는데 나는 그분들한테도 끝까지 버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요즘은 무슨 제품을 개발하고 있나.

"화상 치료제도 있고, 아토피, 고지혈증 같은 질환에 효능이 있는 제품을 연구 중이다. 화상 치료제는 14개 국가에 무상으로 원조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는 시판하지 않고 있다. 효능이 좋고 재료도 전국 산천에 흩어져 있어서 원료를 구하기도 쉽다."

―모두 의료용 제품인데 어떻게 개발했나, 실험실에 나뭇가지도 있던데 민간요법을 많이 연구했나.

"세상에 의사가 없었을 때 그때는 어떻게 치료를 했을까에 초점을 뒀다. 예를 들어 산속 암자에 사는 스님들은 아파도 어디 갈 곳이 없지 않은가. 그분들이 화상을 입으면 어떻게 치료했는지 그런 것을 기록으로 받고, 스님들 조언을 얻어 임상도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만들어보고 수백 번씩 해본다. 그러다 보면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지금 고려대와 암에 관한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삼족오 상표권자이기도 하던데. 왜 등록한 것인가.

"어느 날 내 눈에 삼족오가 들어와서 저거 빼앗기면 안 되겠다 싶어 등록을 해버렸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작한 이후 거액을 제시하며 팔라는 중국인도 있었는데 안 팔았다. 고구려의 새가 지금 우리 여명 808에 와 있다."

아이들 머릿속의 생각을 끌어내라

남 회장은 미국의 자동차왕 포드가 발명왕 에디슨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며 세금을 피해 간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시 포드가 에디슨에게 증여를 할 경우 40%의 증여세를 내야 했는데, 그것을 피하기 위해 포드가 이자를 받기로 하고 에디슨에게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는 것. 그렇게 해서 차용증만 쌓여갔는데 에디슨은 돈을 갚은 적이 없다고 한다.

15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의 에디슨 센터에 가면 '두 사람의 채권 채무 관계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글이 있다고 했다. 이는 결국 포드와 GE(제너럴 일렉트릭)의 관계가 그렇게 긴밀하니 서로 경쟁하지 말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남 회장은 "나도 발명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에디슨을 지원한 포드처럼 하려는 것인가.

"작년부터 그래미상(賞)을 만들어 발명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그런데 상금을 몇 백만원 주는 것보다는 억대는 줘야 발명가들이 뭔가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어 재단을 만들려고 한다. 재단을 만들어 발명가 몇 사람을 지원하고, 그 사람들이 성공해서 또 다른 발명가를 돕는 그런 구조를 만들고 싶은데 만만치가 않다. 특허를 가진 사람만 돕나 아니면 그냥 아이디어만 있어도 도와야 하나 이런 실무적인 고민도 하고 발명가들한테 상금을 줄 때 소득세를 꼭 떼야 하는 건지도 정부에 묻고 싶다."

―스스로도 발명 관련 상을 많이 받지 않았나.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피츠버그 발명대회 3관왕, 러시아 아르키메데스상 등 많은 상을 받았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발명가를 잘 몰라주는 것이 아쉽다. 돈은 더 안 벌어도 좋다. 나는 발명가로 기억되고 싶다."

―청소년들을 위한 발명 경진대회도 열고 있다.

"새 정부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이 '미래 창조'를 하려면 20세 이하 청소년들의 머리에서 많은 발명이 나와야 한다."

―왜 청소년들의 아이디어가 중요한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나온다. 아이들은 세상과 상관없이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을 만들어낸다. 일본의 나카마치 요시로는 어머니가 석유화로에 기름 넣는 것을 보고 18세에 자바라(기름을 넣을 때 쓰는 주름 대롱)를 만들었고, 철조망도 16세의 요셉이라고 하는 목동이 만들었다. 이 제품들은 특허를 내서 어마어마한 부(富)를 창출했다."

―발명 경진대회에 나오는 아이들의 아이디어는 어떤가.

"산불이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산봉우리마다 있는 수원지를 찾아 산불 진화 설비를 만드는 아이디어도 있었고, 전기 청소기 전선처럼 정수기에서 호스를 뽑아 물을 따르고 손을 떼면 다시 말려들어 가게 하자는 제품 개발 아이디어도 나온다. 다 기발하다. 그 아이들이 커서 발명으로 이 나라를 먹여 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