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명 감독들이 영화의 본고장인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만들고 있다. 김지운(49), 박찬욱(50), 봉준호(44) 감독이 그들이다. 이들 중에서도 김 감독은 할리우드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액션영화 연출에 도전했다. ‘라스트 스탠드’다.
아널드 슈워제네거(66)의 10년만의 복귀작인 ‘라스트 스탠드’는 현지에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슈워제네거를 떠나 한국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이고, 이미 ‘장화, 홍련’(2003),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악마를 보았다’(2010) 등을 연출한 스타 감독의 작품임에도 예상보다 적은 상영관에 걸리면서 한국에서도 큰 재미를 못 보고 있다.
이 영화에서 찾아야 할 의미는 따로 있다. 할리우드 시스템을 제대로 경험하고 돌아온 김 감독이 일으킬 새로운 바람이다. 김 감독은 그 동안 쏟아진 할리우드의 연출 제의들을 마다하다 ‘라스트 스탠드’를 선택한 이유로 “할리우드 시스템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할리우드의 제너럴하고 레귤러한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그 중 하나였죠. 초기 개발부터 개봉까지 모두 체험하고 싶었는데 '라스트 스탠드'는 가능했거든요." 물론 "'라스트 스탠드' 역시 시나리오는 이미 나와 있었지만 제 아이디어를 최대한 많이 반영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액션 장르였구요. 그래서 '이제 할리우드에 들어가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통해 시스템을 경험해보자'는 의도로 연출을 맡게 됐습니다."
할리우드 시스템을 경험했다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 눈치다. "얻고자 했던 것들을 다 얻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도 할리우드에서 작업을 했지만 프레임이 다르죠. 박 감독은 감독의 비전이나 스타일이 더 반영될 수 있는 저예산 아트영화이고, 봉 감독은 한국 자본으로 만드는 영화거든요. 반면 저는 가장 레귤러한 상태의 미국 상업영화의 틀에서 작업을 한 것이죠. 그것이 제 바람이었거든요. 저는 다음에 할리우드에서 작업을 한다면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더 잘할 수 있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게 됐어요. 그게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낯선 할리우드 시스템이 앞길을 막아섰다. "사실 언어적 핸디캡, 언어의 장벽이 가장 힘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작 힘든 것은 시스템이더군요. 한국과 비교해 감독의 현장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죠. 떨어진다는 것은 뭘 못한다는 것보다 똑같은 권한을 가진 사람이 3개 집단이 있어요. 스튜디오, 제작자, 주연배우죠. 한국에서는 제가 결정하면 바로 영화에 반영할 수 있는데 할리우드에서는 이들 모두를 설득해야 하죠. 그렇다고 100%까지 반영되지 못하죠. 그런 과정들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국에서 감독의 제자이자 아들이며 분신이기도 한 조감독이 할리우드에서는 엉뚱하게도 그의 감시자나 다름없었다. “한국에서 조감독은 감독의 미학적 비전이나 영화적 감성을 최대한 영화에 반영시키는 조력자입니다, 그런데 할리우드에서 그것은 20~3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스케줄을 맞춰서 영화를 끝내는 역할을 하죠. 감독 편이 아닌 셈이에요. 그러니 저로서는 더욱 외로워질 수밖에 없더라구요.”
김 감독의 할리우드 조감독에 대한 ‘뒷담화’는 이어진다. “막강한 노동조합의 규정 때문에 정오에는 무조건 밥을 먹으러 가야 하고, 오전 7시에 나왔으니 오후 7시에는 퇴근해야 한답디다. 아무리 상업영화라고 해도 어쨌든 창작이고, 예술인데 그들은 안 그렇더군요. 한창 촬영하는 중이라 저도 한창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었거든요. 조금만 더 가면 뭔가가 나올 듯 싶어서 ‘한 번만 더 가자’라면서 ‘슛!’을 외치는데 조감독이 오더니 ‘밥 먹으러 가야 한다’는 거에요. 싸늘하게 열정이 식어버리는 경험…. 그런 일이 거듭될 때마다 ‘이게 뭐지,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 했답니다. 한국이었다면 한창 찍다가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찍고 먹자는 분위기인데 말이죠.”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감독과 스태프들이 가족 개념이죠. 저도 그게 꼭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은 서로 도우면서 자기 일처럼 합니다. 감독이 고민하면 같은 질과 양의 고민을 스태프들도 똑같이 하죠. 그런데 할리우드는 ‘나는 내 일 할래, 그것은 네 일이니 네가 고민해라’는 분위기랍니다. 물론 고민하면 들어주기는 해요. 그런데 거기까지죠. 어떻게 해야 할 지 서로 의견을 내고 조언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김 감독도 적응을 하니 할리우드 시스템의 장점까지 챙길 수 있게 됐다. “점점 적응이 되더군요. 나중에는 밥 시간이 되면 제가 먼저 ‘밥 먹고 하자’고 했어요. 그 사이에 저는 고민을 더 하면서 더 좋은 신을 완성시킬 수 있었구요.”
김 감독은 “엄밀히 저도 기계가 아니라 사람인 만큼 사이클이 필요한 것이죠. 한국에서는 마치 서로 희생해서 영화를 만드는 분위기였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쉴 때 쉬니까 저 자신도 더 좋은 컨디션으로 다음 날 나올 수 있고, 배우나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이죠. 그런 것이 할리우드의 합리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고 장점을 알렸다.
액션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 관념도 몸을 사린다고 할 정도로 월등히 높았다. “할리우드에서는 아주 경미하더라도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결부된 모든 스태프들이 페널티를 물게 돼요. 그래서 엄청나게 안전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총을 쏠 때 카메라를 향해 쏴야 그림이 제대로 나오는데 공포탄으로도 절대 그렇게 못하게 해요. 안전장치로 김지용 촬영감독이 투구 쓰고, 유리벽도 세워놓고 그 앞으로 쏘려고 했는데도 빗나가게 쏘도록 하는 거에요. 위험하다는 이유죠. 그래서 김 촬영감독이 뒤에 있다가 쏠 때 앞으로 가서 찍는 편법을 썼답니다.”
차량 신도 마찬가지다. “차가 지나가는 것도 차가 옆을 확 가깝게 지나가면 정말 박진감이 나는데 할리우드는 위험하다고 못하게 해요. 대신 CG를 하죠. 그런데 CG는 피사체의 무게감이 없고, 질감이 떨어져서 맨송맨송하거든요. 그런데 절대 그런 촬영을 못하게 막아요. ‘놈놈놈’ 촬영할 때는 말이 제 머리 위로 지나간 적도 있는데 말이죠.”
한국으로 돌아온 김 감독은 강동원(32) 신민아(29)와 단편 ‘하이드 & 시크’를 찍고 있다. 할리우드 시스템을 이 작품에 적용하고 있을까.
“조감독을 원없이 부려먹고 있죠. 너무 편해요. 하하하”라고 농을 한 뒤 “할리우드 가기 전과 달라진 것들도 많죠. 예를 들면 조감독이 깨질 일을 해도 크게 야단치지 않아요. 대신 ‘더 잘하자’고 격려하죠. 또 예전같으면 조감독이 ‘쉬었다 하죠’라고 하면 ‘잠 줄이고 더 하자’고 했지만 이제는 그들이 요구하는 것 충분히 다 들어주고 있어요. ‘쉬어야 합니다’고 하면 ‘그래 쉬자’고 하죠”라고 털어놓았다.
물론 김 감독은 제작자나 투자자가 아니다.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도 인정한다. “저로서는 현장에서 그들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 주는 것부터 일단 시작해야겠죠. 처우문제나 임금문제인데 그런 것들은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하구요.”
그러면서도 김 감독은 “할리우드도 예전에는 우리나라 제작 현실과 같았지만 세상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발전하면서 권리가 개선되고 복지가 늘어났습니다”라면서 “우리나라도 점점 좋아질 겁니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