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5일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총재에 적극적 엔저(円低)·금융완화론자인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68·사진)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를 내정했다.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 정책)' 적극 지지자를 일본은행 총재에 임명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날 주가는 지난 주말에 비해 2.43% 치솟은 1만1662.52포인트(닛케이지수)를 기록했다. 이는 2008년 9월 이후 최고치이다. 일본 주가는 올 들어 12.1% 올라,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 중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엔화가 한때 1달러당 94.77엔을 기록했다. 이는 2010년 5월 수준의 엔 약세이다.
구로다는 1999~2003년 재무성 재무관(국제금융 담당) 시절 엔저 정책을 주도한 인물이다. 재무성 출신이 총재에 임명되는 것은 15년 만이다. 구로다는 평소 "일본은행이 금융완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이 무수히 많은데도 방관하고 있다"면서 금융완화 정책에 소극적인 일본은행을 줄곧 비판해왔다. 구로다 총재는 국채·증권 등의 자산을 일본은행이 사들이는 방법으로 시중에 무제한 자금을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시장에서도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을 늘릴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10년 국채 금리가 전주에 비해 0.02%포인트 하락한 0.7%까지 떨어졌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25일 인터넷판을 통해 "총재 인선으로 보면 1달러당 100엔도 가능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 같은 분위기가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은행의 독립성을 내세워 아베노믹스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현 일본은행 총재는 당초 4월 퇴임 예정이었지만 3월 19일에 물러난다.
부총재에는 구로다 총재보다 더 적극적인 금융완화론자인 이와타 기쿠오(岩田規久男·70) 가쿠슈인(學習院)대학 교수와 나카소 히로시(中曾宏·59) 일본은행 국제담당 이사가 내정됐다. 이와타 교수는 '일본은행은 디플레의 파수꾼' 등의 저서를 통해 일본은행이 디플레이션(장기적인 물가하락) 탈출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해 온 것으로 유명한 '반(反)일본은행 논객'이다.
일본에선 아베 총리가 아베노믹스에 가속도를 내기 위해 총재와 부총재를 동시에 금융완화론자로 교체하기로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1990년대 버블 붕괴에 대한 반성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내세워 온 일본은행을 적극적 금융완화 추진파가 접수함에 따라 앞으로 완전히 새로운 정책이 펼쳐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ADB 총재로 일하며 두터운 국제 금융 인맥을 갖고 있는 구로다를 일본은행 총재에 임명하는 것은 엔 약세 정책에 대한 외국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은행 총재가 되려면 '국제금융 마피아의 일원'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엔 약세가 계속될 경우 '이웃 나라 거지 만들기 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질 것이므로, 이를 적극 방어할 수 있는 국제금융파 구로다가 적임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