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정세(36)는 이상한 배우다. 배우 혹은 연예인이라면, 대중이 자신을 몰라주는 게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최근 서울 신문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오정세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특정 꼬리표가 오랫동안 달리는 것은 배우에겐 독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작품마다 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 관객이나 시청자 머릿속에서 '과거의 오정세'를 지워갈 겁니다."
지난 14일 개봉한 코미디 영화 '남자사용설명서'(감독 이원석)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능력은 있지만 인정받지 못하던 CF 감독 최보나(이시영)가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신비한 비디오테이프를 이용해 톱스타 이승재(오정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오정세가 연기한 승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나에게 추근대다가 수차례 뺨을 맞는다. 복싱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배우 이시영이 매서운 손맛을 보여주는 이 장면을 본 관객들은 "얼마나 아팠을까?"라며 궁금해한다. 하지만 오정세는 "그 장면을 찍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했다.
"보나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실제로 후려쳤어요. 그럴 때 배우는 굉장히 기쁘죠. 그런 리액션이 있으면 저 역시 새로운 형식으로 연기를 이어갈 수 있거든요."
오정세는 "승재는 무명 생활을 거쳐 어렵게 스타가 된 인물"이라며 "나의 무명 시절 경험과 감정이 캐릭터를 만드는 데 많이 반영됐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승재가 무명 시절 캐스팅을 위해 조감독 앞에서 춤추는 장면' 등 관객들이 많이 웃는 장면이 오히려 "애잔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개봉 이후 영화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오정세의 코믹연기가 물이 올랐다" 등의 평이 올라오고 있다. 오정세는 "B급 코미디와 로맨틱 코미디가 결합한 독특한 영화"라며 "외모도 평범한 내가 '톱스타' 역할을 한다니까 많은 분이 놀라고 걱정했었다"고 했다.
1997년 영화 '아버지'에서 단역을 맡으며 영화에 입문한 오정세는 올해로 데뷔 17년차다. 그동안 50여편의 영화·드라마·연극에 출연했다. 최근 드라마 '보고 싶다'와 서너 편의 영화로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지만, 10여년을 거의 무명 배우로 살아왔다. 그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는 나도 좋은 배우가 될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며 "그래서 4~5년간 단 한 작품도 못하거나, 모든 오디션에서 탈락한 적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오정세는 "최근 굳어지고 있는 '코믹한 이미지'를 억지로 벗으려 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가벼운 역할을 많이 했으니 조절은 필요하겠죠. 그러나 다시 코믹한 캐릭터가 들어와도 억지로 기피할 생각은 없어요. 비슷한 코미디물이라도 전체 이야기나 구조를 따져서 전혀 다른 인물을 그려내는 게 제 역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