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강산 1·2
박정배 지음|한길사|424쪽·392쪽|각 권 1만8000원
"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라는 문장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봄기운 가득한 강원도 막국수, 폭염도 잊게 하는 여름 별미 콩국수, 실향민의 애환이 담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음식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전국 구석구석을 돌며 구포국수·밀면·고기국수·칼국수 등 국수 9종의 맛과 역사를 담았다.
◇국수는 왜 부산·대구에서 인기?
국수 하면 역시 부산이다. 식행(食行)의 출발지도 부산. 책은 부산 서민들이 즐겨 먹던 구포국수부터 소개한다. 저자는 "1905년 경부선 구포역이 들어서면서 구포가 경상도 곡물거래의 주요 거점으로 자리 잡아 제분업과 제면업이 일제강점기부터 성행했다"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의 우동문화가 일찌감치 들어와 있었던 것도 부산이 면의 도시가 된 이유"라고 했다. 소면을 멸치국물에 삶아 먹는 구포국수는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부산과 마산이 공업화의 중심이 되면서 수많은 공장 노동자가 값싸고 맛있고 양까지 많은 구포국수를 먹었다.
6·25 전쟁은 '면의 역사'도 바꿨다. 실향민들의 북한식 냉면이 구포를 중심으로 한 부산의 면문화와 만나 '밀면'이라는 독특한 음식문화를 만들어냈다. 밀가루 70%에 고구마 전분 30%를 섞은 것이 시작. 피난민들이 메밀 대신 부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밀가루로 만든 '대체음식'이다.
대구는 전국에서 면 소비가 가장 많은 도시로 꼽힌다. 저자는 "대구에 국수공장이 유독 많았던 이유는 더운 날씨 때문"이라고 했다. 높은 기온은 국수 건조에 유리하다는 것. 1960년대 말 쌀 부족 현상으로 시작된 정부의 분식장려운동은 국수공장으로 넘쳐나던 대구에 1970년대 본격적인 칼국수 문화를 꽃피우게 했다.
반면 호남지방에서는 '콩국물' 집에서 파는 콩국수가 유일하게 소개됐다. "면문화가 결국 공업화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공업화가 덜 된 호남에는 국숫집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
◇법정스님도 좋아한 맹물국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을 이용한 막국수의 메카는 강원도. 하지만 속초는 강원도에서 막국수 가게가 가장 적은 곳이기도 하다. 함경도 실향민들이 정착하면서 함흥냉면이 워낙 강력하게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국수는 스님들이 별미로 즐긴다 해서 절에서는 승소(僧笑)라 부른다. 일명 '맹물국수'는 성철스님도 좋아했다. 약수물을 팔팔 끓인 후 간장을 약간 넣고 졸인 다음 식혀서 국수를 말아먹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시냇물에 국수를 헹구어 아무런 간도 하지 않고 먹었다고 한다.
국수 맛집을 찾아 떠난 '식행(食行)'을 담았지만 '한국의 국수사'로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옛 문헌을 인용하며 소면은 언제 한국에 들어왔는지, 콩국수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들려준다. 조선 임금들이 냉면을 즐겨 먹었다는 기록도 전한다. 특히 고종의 냉면 사랑은 조선의 어느 왕보다 강했다. 후궁이었던 삼축당 상궁 김씨(1890~1972)의 구술이 흥미롭다. "고종께서 즐겨 드시던 냉면은 배를 많이 넣어 담근 동치밋국이 특징이고 꾸미로는 편육, 배, 잣을 위에 가득 덮어 장식했으며 그 맛은 담백하고 달고 시원하였다."
'음식강산' 시리즈는 모두 5권으로 완성될 예정. 두 권이 먼저 나왔다. '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제2권. 제1권은 '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는 부제로 문어·대구·장어·홍어 등 11종의 생선과 어패류를 다뤘다.